230827. 연중 제21주일.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연중 제 21 주일입니다. 더위도 한풀 꺾이고, 극성스런 태풍과 장마비도 지나갔습니다. 가을의 길목입니다. 결실이 영글어 갈 때입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무엇이 영글어가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전례]의 핵심단어는 “열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1독서>는 예언자 이사야의 이방민족들에 대한 신탁 중에서 세브나에 내린 심판의 끝부분입니다. 세브나는 앞 절에 따르면,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궁궐을 관리하는 시종장이었는데,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시 하는 권력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관직에서 내쫓으시고, 힐키야의 아들인 엘야킴에게 권력을 넘겨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이사 22,22). 바로 이 말씀이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9)로 <요한묵시록>에서는 “거룩한 이, 진실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3,7-8)로 표현됩니다.
<제2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들의 구원문제를 다루는 <로마서> 9-11장의 마무리 부분 ‘하느님 찬미가’입니다.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로마 11,36). 여기에서는 세 개의 전치사, 곧 (그분) ‘에게서’.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를 사용하여,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근원이시고, 만물의 길이시며, 만물의 목적이심을 나타냄과 동시에,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만 속한 것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행동하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지를 바라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생각하느냐?”(마태 16,13)라는 질문으로 시작 됩니다. 그리고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 당시 제 2성전 유다이즘에서 메시아는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진 임금이나 사제 혹은 예언자로서 마지막 시대에 구원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마태 16,16)으로 표현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메시아인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느님과 절대적이고 유일한 관계를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성부 하느님에 대한 고백이요, 성부 하느님과 성자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밝혀주신 이 계시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곧 교회는 “하느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세워집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베드로에게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놀라운 신비, 곧 교회의 신비가 있습니다. 교회는 이 계시의 ‘신앙 위’에 세워질 뿐만 아니라,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가 주어지고 “매고 푸는” 특별한 권한이 부여됩니다.
이는 그가 행한 것을 “하늘에서”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교회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됩니다. 곧 교회 안에는 사람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가 활동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하늘이 땅에서 열린 것입니다. 곧 우리는 하늘을 땅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매인 것을 푸는 일은 하늘에 가서 하는 일이 아니라, 땅에서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곧 우리가 땅에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할 때, 하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늘이 이미 땅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의 사랑의 행위 안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땅에서 하늘을 열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형제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바로 지금 용서해야 할입니다. 바로 오늘이 용서의 축제일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한편, 우리는 오늘,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이신가?”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있는가?” 하고 다시 물어야 합니다. 사실, 이렇게 묻는 것은 하나의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심과 기준이 아닌, 아니 오히려 반대되는 관심과 기준을 지니신 예수님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의한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체제와 구조에 대한 도전이었듯이 바로 지금 우리 시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질서를 허물어뜨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섬김으로서 서로를 먹여 살리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대안으로 제시하시고 실천하셨기에, 우리도 또한 이 시대의 풍조를 거슬러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질문은 나는 지금 기존의 질서와 가치와 행동양식에 여전히 머물러 살고 있지는 않는지, 또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지를 액면 그대로를 보게 하고, 마치 부자청년에게서처럼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게 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주님!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하오니,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고 사랑하게 하시어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