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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옥(地獄)같은 세상에서 천국(天國)의 삶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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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29 조회수600 추천수7 반대(0) 신고

지옥(地獄)같은 세상에서 천국(天國)의 삶

-하느님 중심의 삶-

 

 

“하느님, 이 나라를 구하소서!”

 

날마다 새벽 수도원 십자로 중앙에 위치한 예수님 성심상 앞을 지날 때마다 작금의 백척간두(百尺竿頭),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주십사 바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지옥같은 세상에서 천국의 삶은 어떻게? 답은 오직 하나,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강론 제목입니다. 개념을 분명히 이해 하고자 사전에서 지옥과 천국을 찾아봤습니다.

 

*지옥;1.(불)중생이 지은 죄업으로 죽어서 간다고 하는 지하의 세계. 나락 2.못견딜만큼 괴롭고 참담한 형편이나 환경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천국;1.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다가 죽은 후에 갈 수 있다는 영혼이 영원히  축복받는 나라. 천상에 있다고 믿는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 2.하느님이 다스리는 은총과 축복의 나라. 3.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자유롭고 편안한 곳, 또는 그런 상황.

 

실제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본 지옥과 천국의 설명입니다. 죽어서 가는 지옥이, 천국이 아니라, 이미 현세에서 시작되는 지옥이요 천국입니다. 참으로 지옥같은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은총과 더불어 비상한 노력과 훈련이 있어야 함을 봅니다. 탐욕의 본능대로의 삶이라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상대방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각자도생, 나혼자만이 살겠다는 이들이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극심한 분열로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곳이 지옥입니다.

 

한반도땅, 남북분단과 분열에 이어 남남분열도 극단으로 치달으니 참 우려스럽습니다. 하느님이 끊임없이 시도하는 바 일치와 통합이요, 악마가 끊임없이 시도하고 즐기는 바 분열입니다. 참으로 분열을 시도하는 자라면 그가 악마입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이 가장 큰죄입니다. 좌우의 균형과 조화를 통한 일치와 통합이지 서로 대결과 배격으로 원수처럼 분열하라 있는 좌우가 아닙니다. 좌우이전에 공감대를 이뤄야할 상식과 예의, 나라 사랑, 법의 준수, 정의와 평화입니다. 참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가 절실한 시절입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어제 열심한 믿음의 자매와 주고 받은 메시지도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주위에 지인들이 많이 아프네요. 제 나이가 그렇겠지만 슬프고 아픈 일들이 더 많네요. 삶을 열심히 살다보면 나이가 들어 어느덧 아파오고 그러다 생을 마감하고...이런 삶을 사는 저희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생각조차 못할 일이지요!”

 

“공감합니다. 고해인생이 적나라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중심의 믿음으로 축제인생을 살도록 살아 있는 그날까지 분투의 노력을,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너무 힘든 세상, 아픈게 정상일 것이나 파이팅! 용기를 내어 주님의 전사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궁극의 중심이요, 희망이요, 의미요, 빛이요,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요, 눈이지요. 바로 주님을 잃어 뿌리없이 표류와 방황이요 죄도 병도 많은 것입니다. 모든 병은 마음의 병, 영혼의 병에서 시작됩니다.”-

 

어제는 참 고맙고 반갑고 기쁜 날이었습니다. 만5개월 동안 뇌졸증으로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여 서서히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된, 무려 25년 동안 제 강론집은 물론 시집을 복사, 제본해다 준, 참 한결같은 믿음의 자매와 병원 외출후 귀원하는 도중 잠시 만나 함께 식사한 잊지 못할 날이었습니다. 만남후 자매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오늘 하느님 중심의 스토리와 콘텐츠 풍부한 참 기분 좋고 유쾌한 날이었습니다! 그대로 천국체험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날로 더욱 주님 안에서 영육으로 건강해지리라 믿고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천국은 선택입니다. 백절불굴의 믿음으로 행복을, 천국을 선택하여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최상의 삶의 방법은 단 하나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스토리와 콘텐츠도 형성됩니다. 하느님 중심의 자리에 그 무슨 우상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느님 중심의 자리에, 세상이, 돈이, 재물이, 영화가, 명예가, 건강이, 사람이, 권력이 자리하면 그대로 그 늪에 빠져, 그에 중독이 되어 악마가, 괴물이, 야수가, 폐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악마는 하느님 중심을 잃었을 때 인간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사람들이 삶의 중심을, 길을, 희망과 꿈을, 빛을, 진리를 보는 눈을 즉 가치관, 역사관, 국가관, 정치관, 교육관, 결혼관, 인생관, 세계관등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보는 눈인 “관(觀)”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관(觀)”앞에는 "올바른"이란 말마디가 반드시 위치해야 합니다. 역사의식도 시대정신도 없고 열려 있는 지평이 아닌 닫혀진 폐쇠된 근시안적 지평과 시야입니다. 지식은 산더미처럼 많은 데 통찰할 수 있는 지혜의 눈, 혜안(慧眼)이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삶의 중심인 하느님을 잃음으로 자초한 재앙입니다. 이래서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 순간 얼마전 칼럼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지옥이 텅 비었다. 악마들은 모두 여기에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왕자 퍼디낸드가 폭풍우 속에서 외친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이말은 다음과 같이 수정돼야 한다. 여기가 지옥이다. 악마들은 모두 여기에 있다.”

 

보십시오. 오늘 복음 장면은 온통 악마들의 출몰을 연상케 합니다. 그대로 “죽음의 잔치”를 상징합니다. 악마는 하느님 중심을 잃어 탐욕, 질투, 분노의 노예가 되어 살 때 인간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헤로데, 헤로디아, 헤로디아의 딸, 모두 사람이라 하지만 하느님 중심 부재의 악마요 괴물들입니다. 이런 이들의 삶이라면 스토리도 콘텐츠도 있을리 없습니다. 오직 참사람은 금욕가, 순교자, 은수자들의 아버지, 마지막 예언자,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성 요한 세례자 의인 하나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반면교사가 됩니다. 과연 하느님 중심의 참삶인가 묻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부재보다 큰 불행이자 재앙은 없습니다. 악마들의 승리인 듯 하지만 궁극의 승리는 하느님께, 파스카의 예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배치가 절묘합니다. 오늘 복음(마르6,17-29)의 “죽음의 잔치”에 이어지는 복음, “오천명을 먹이시다”라는 장면은 “생명의 잔치”(마르6,30-44)를 상징하니 오늘 복음과의 대조가 참 극명합니다. 어둠과 빛, 절망과 희망, 죽음과 생명, 지옥과 천국, 악마들과 참사람들의 대조처럼 생각됩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중심의 생명의 잔치가 벌어졌고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 합니다.

 

복음의 세례자 요한과 한쌍을 이루는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그가 예언자의 소명을 받은후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기 위한 주님의 교육이 참 철저합니다. 지옥같은 세상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 믿음으로 온통 완전무장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대로 날마다 영적전쟁터에 출전(出戰)을 앞둔 우리를 향한 말씀같습니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당신의 성령으로 완전무장하여 당신의 용감한 전사로, 말씀의 전사로, 평화의 전사로 세상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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