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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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8-29 | 조회수590 | 추천수6 | 반대(0) |
저녁 모임이 있어서 ‘제주도’라는 횟집으로 갔습니다. 먼저 갔던 분에게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주방에 기계가 고장 나서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손님도 별로 없어서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먼저 갔던 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오늘 여기서 신부님을 만나기로 했는데요.”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아! 신부님이랑 만나기로 하셨어요. 그럼 들어오세요. 오늘은 딱 한 팀만 손님을 받겠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식당에 도착해서 나중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 오후에 탁 한 팀만 있는 식당에서 편안하게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고, 우리만을 위해서 영업을 해 준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식당을 나오는데 주방장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주인은 신부님이 오시면 좋아합니다. 머라도 하나 더 드리려고 합니다.” 주인은 신자는 아니었지만 사제를 존중하는 마음이 더 고마웠습니다. 자주 가는 단골이기에 주인이 특별히 배려했을 수 도 있습니다. 단골 이전에 사제를 위하는 주인의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식당 주인의 따뜻한 배려를 고맙게 생각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이 떠올랐습니다.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는 사제. 어른들에게 공손하며, 청소년을 따뜻하게 대하는 사제.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하고, 고백성사를 성심껏 주는 사제. 미사 집전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제. 성체조배를 자주 하는 사제. 사제복을 즐겨 입는 사제. 본당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사제. 수도자와 보좌신부와 원만한 관계를 가지는 사제.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먼저 돌보는 사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언제나 본당을 지키는 사제. 겸손하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끝까지 경청하는 사제. 후배 양성에 힘을 쓰며 생활하는 사제. 죽기까지 사제직에 충실한 사제.”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저는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있다면 사제복은 즐겨 입고 다녔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 예수님께서 바라는 사제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의 위선과 가식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우리 속담에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제사 밥에만 관심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율법과 계명의 핵심인 십자가와 희생에는 관심이 없고 율법과 계명으로 얻어지는 보상에만 관심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본인들은 지키지 않는 율법과 계명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은 따르지만 그들의 행동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겉모습만 꾸미고 내면의 세계는 텅 비어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의 위선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생명을 이어주던 탯줄을 끊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졌을 때는 세속의 권력에 취해서 십자가와 희생을 외면했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의 사목자들에게도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사목자들이 바오로 사도가 보여주었던 삶을 살아간다면 예수님께 칭찬받는 사목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추구한다면 예수님께 야단맞는 사목자가 될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당신이 계시고, 저승에 누워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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