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0. 연중 제23주간.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다.”(마태 18,20)
오늘 말씀전례는 ‘잘못된 형제의 교정’과 교정에 대한 본정신이 ‘사랑’임을 말해줍니다. 사실, 갈등을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공동체 생활 안에서나 개인관계 안에서나 국가적인 정치 안에서나 언제나 큰 과제로 다가옵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언자를 파수꾼으로 세워 잘못된 길을 가는 이를 일깨우라고 말합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에제 33,7-8)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율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타일러라. 단 둘이 만나 타이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다른 증인을 데려가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참조)
이는 우리 자신과 교회가 잘못된 세상과 공동체, 잘못된 이웃이나 형제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이는 타인과 세계와 우리 자신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깊은 유대와 긴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형제의 잘못이나 세상의 잘못에 우리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도 <복음의 기쁨>에서 하셨습니다. ‘진리와 사랑 앞에서 몸을 숨기는 것은 자살행위다.’(272항 참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형제를 교정하는 방법과 절차를 <다섯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혼자 단독으로 하는 교정이여, <둘째>는 두세 사람이 함께 하는 교정이요, <셋째>는 교회를 통한 교정하는 것이요, <넷째>는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는 것을 통한 교정이요, <다섯째>는 형제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바치는 기도를 통한 교정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교정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단지 잘못한 형제에 대한 형식적인 교정방법이나 절차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교정’은 처벌이나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형제적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타인을 ‘남’이라 여기지 않고 서로를 형제요, 자신의 일부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라 여기는 마음에서 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그의 [규칙서](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한 형제를 고쳐주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행위와 같다. 왜냐하면, 잘못한 형제는 마치 독 있는 뱀에 물린 상태와 같은데, 그 독을 빼내어주지 않고 그대로 나두는 것은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한 형제의 ‘교정’이 자신의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극한 형제적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오직 사랑과 신뢰, 그리고 하느님께 의탁해서 할 일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차라리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어떤 형제가 잘못했을 때는, 먼저 그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바로 내 ‘형제’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비록 그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는 죄인이기 이전에, 바로 내 ‘형제’요, 나 또한 그의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처지에 이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무관심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이때가 잘못한 형제를 위해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사랑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마태 18,19)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죄를 찾아내어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회개시켜 그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8,18)
교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권한, 곧 ‘풀기와 매기’의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매는 권한은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매는 조건이 풀어지면, 교회는 항상 풀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죄인이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곧 스스로가 해결사가 되려고 하지 않고, 아버지께 신뢰로 의탁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도 “(잘못한 형제들에게) 사랑을 더 베풀 것이며, 또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규칙서 27,4)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그러니, 이 세상에서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일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이루는 것은 모인 사람의 수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사랑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모으는 바로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다.”(마태 18,20).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마태 18,15)
주님!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형제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의 잘못이 드러나거든
그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함을 알고, 힘을 모아 사랑하게 하소서!
그를 돕는 길은
죄를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 있음을 알게 하소서.
우리의 사랑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이신 당신께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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