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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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9-12 | 조회수650 | 추천수6 | 반대(0) |
지난 8월 23일은 저의 사제서품 32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LA에 신문 홍보를 위해서 가있었습니다. 몇몇 교우 분들이 자리를 마련하여서 ‘맘모스 산’에 갔었습니다. 맘모스 산은 해발 11,000피트가 넘는 높은 산입니다. 마모스 산은 환경보호를 위해서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셔틀버스에서 ‘우리는 운전사를 원합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보았습니다. 저는 광고 문안을 보면서 파격적인 조건에 놀랐습니다. 조건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경험자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비용을 들여서 훈련을 시켜 주겠다. 시급은 21불에서 27불을 주겠다. 정년퇴임 시 연금을 보장하겠다. 스키장 회원권을 무료로 주겠다. 각종 복지제도를 실시하겠다. 년 1,000불의 상여금을 보장하겠다.” 대충 읽었지만 파격적인 조건이었고, 호감이 가는 조건이었습니다. 제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지원하고 싶은 조건이었습니다. 신문사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서 직원들의 근무 일수를 줄인 저에게는 꿈과 같은 조건이었습니다. 저는 교구 성소국장으로 5년간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원했습니다. 교구와 신학교에서는 지원자들 중에서 신학생을 선발하였습니다. 40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교구는 신학생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생 감소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구의 감소입니다. 인구의 감소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신학생 감소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사적체로 인한 사제들의 의욕감소입니다. 오랜 기간 보좌신부로 지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보좌신부님들의 의욕이 감소하였고, 이는 신학생 감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가정의 문제입니다.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님은 학업을 위해서라면 성당에 가지 않는 것도,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눈감아 주는 현실입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고, 가족이 신앙 안에서 대화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성소의 씨앗은 가정에서 키워져야 하고, 교회에서 돌봐주어야 합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는 신학생을 원합니다.’라는 모집요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조건이면 좋을까요? “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제가 되겠다는 열정이면 좋습니다. 사제가 될 수 있는 소양과 지식은 신학교에서 책임지겠습니다. 성지순례를 비롯한 해외연수의 기회를 주겠습니다. 대기업은 아닐지라도 중소기업 수준의 급여를 책임지겠습니다. 부모님의 의료비용을 교회에서 부담하겠습니다. 보좌신부 근무 기간을 10년 이내로 줄이겠습니다. 휴가를 비롯한 각종 복지제도를 마련하겠습니다. 차량지원을 교구에서 하겠습니다.” 교구와 본당 그리고 가정에서 사제성소를 위한 고민과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국립공원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가 꼭 필요했기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모집 광고를 했던 것처럼 교회도 사제성소가 정말로 필요하다면 그에 합당한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제자들을 모았을까요?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과 표징으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함께 지냈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치유의 기적과 새로운 권위를 지닌 말씀은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시면 그 옆에 자리에 있겠다고 서로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도 나를 떠나겠느냐?”라고 하셨을 때입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선생님을 두고 저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힘든 자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다. 나에게 와서 쉬어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마라.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함께 하는 것, 말씀과 표징 그리고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흠뻑 빠져서 제자가 된 바오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성직자들이, 수도자들이, 교우들이 예수님께 흠뻑 빠져서 산다면 사제성소는 늘어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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