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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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9-15 | 조회수41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요한 19,25-27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지는 오늘을 교회에서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축일로 지냅니다. 고통의 성모 기념일을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바로 다음에 지내는 것은 마리아께서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음을,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협력하시기 위해 그 과정에 따르는 극심한 고통마저도 기꺼이 감내하셨음을 드러내지요.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과정에 ‘협력자’이자 ‘동반자’로서 내내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신 그 신비로운 순간부터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아들의 주검을 비통하게 끌어안으신 그 슬픔의 순간까지 흔들리거나 주저함 없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 겁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시던 그 때에, 요한과 성모님 그리고 다른 여인들이 그 아래에서 그분과 함께 머물러 있었던 것은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그들도 죽음이 두려웠지만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를 차마 혼자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겁니다. 그 중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셨던 성모님께서는 사실 그 자리에 서 계시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겪고 있는 저 끔찍한 고통을 생각하면 슬픔 때문에 까무러칠 것 같았지만, ‘차라리 내가 대신 저 십자가에 매달렸으면’하는 마음으로 아드님이 겪고 계시는 고통에 온 마음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저 아들이 곧 죽음을 맞게될 것을 생각하면, 아들 없이 홀로 살게될 그 외롭고 공허한 삶을 생각하면 걱정과 근심으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당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아들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실걸 아셨기에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서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고통의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성모님께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어머니를 당신 제자에게 부탁하시는 슬픈 유언으로 들리지만, 사실 이 말씀은 성모님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당신 아들은 세상의 적으로 몰려 억울하고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는게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셨음을, 예수님의 죽음은 그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것임을,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에 동참한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을 먼저 떠나보내는 그 슬픔과 고통을 통해 ‘교회 공동체’라는 든든한 가족을 얻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임을 알려주신 겁니다.
고통은 스스로 그 의미를 찾고 받아들일 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만드는 ‘반전의 계기’가 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당신 섭리로 그 계기를 마련해주십니다. 앞으로도 우리 삶에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 고통 자체에만 매몰되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겪는 모든 고통은 나로 하여금 삶의 참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을 굳게 믿으며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고통의 어머니께서 우리 곁에 함께 계시며 힘을 주시고 참된 행복의 길로 인도해주실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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