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5.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고통이 기념해야 할 일일까요?’ 어쩌면, 고통은 저주요 재앙일 것입니다. 만약, 사랑이 없는 고통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고통, 사랑으로 생기는 고통, 사랑하기에 받는 고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기쁨을 배우게 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마치 우리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건너감이듯이, 바로 그 죽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넘어가듯이, 사랑에서 피어난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으로 건너감이요, 바로 그 고통을 통하여 기쁨으로 넘어감입니다. 우리는 바로 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현양’을 통해서 그 신비를 보았습니다.
성모님의 고통은 예수님과 함께 벌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매 맞으시면, 성모님도 매 맞으시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는 성모님의 “통고, 통애”(compassio)를 말합니다. 곧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고통에 함께 “참여”(partitipatio)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아파하는 것에 참여하신 사랑입니다. 이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항)
또 바오로 6세 교종의 문헌 <마리아 공경>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신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계시며, 야훼의 고난 받는 종의 어머니로서 고통을 당하셨다."(마리아 공경 7)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처참해진 모습을 애끓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모친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장면입니다. 아들의 죽음과 함께 있는 성모님의 이 광경은 인간적인 고통과 신앙적인 굳셈이 함께 연출되면서, 그지없이 비장하면서도 동시에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가 고통과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동시에 드러나고 있듯이,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에서도 고통과 믿음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이토록,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면서, 나아가 동의만하고 의탁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하면서 예수님의 고통과 믿음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시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깊이 참여하십니다.
성모님과 함께 오늘 우리도 <본기도>에서는 이렇게 바칩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아드님 서서, 성모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참여하게 하소서."
하오니 어머니, 고통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고통을 통하여 기도하고, 고통과 함께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 안에서도 희망하고, 고통 안에서 믿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는 그분의 어머니께서 서 계셨습니다.”(요한 19,25)
어머니!
당신과 함께 십자가 밑에 있게 하소서. 믿음으로 서 있게 하소서.
십자가 밑이 저의 자리가 되게 하시고, 당신과 함께 아들의 남은 고통에 참여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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