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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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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16 조회수706 추천수4 반대(0)

일본과 한국을 이야기할 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부산에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본의 대마도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가까운 나라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과 한국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국가입니다. 일본의 해적들이 우리의 바다로 와서 약탈을 하였습니다. 급기야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1592년에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우리의 문화재가 약탈당하였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많은 도공들이 끌려갔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많은 의병들의 활약으로 일본은 본국으로 철수 하였습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룩했던 제국주의 일본은 1910년에 대한제국을 합병하였습니다. 우리는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은 만주와 간도로 떠나야 했고,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으면서 패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이 일본과 한국의 관계입니다. 한쪽은 끊임없이 침략을 하였고, 한쪽은 그 침략을 막아야 했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배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있음에도 일본과 한국은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공산주의에 맞서서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국제관계는 개인과의 관계와 다르기에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 824일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최소한 30년은 방출해야 하고, 100년이 넘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는 것은 비용의 문제라고 합니다.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는 것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오염수라면 자국에서 공업용수로 사용해도 될 것이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은 역시 비용의 문제라고 합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공업용수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과 같은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은 일본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출에 대해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면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일본의 오염수 방출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한국의 주교회의도 일본의 오염수 방출에 대해서 반대를 표명하였습니다. 바다는 어느 한 나라의 바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은 문제 해결의 본질은 아닙니다. 수산물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문제 해결의 본질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다와 인간이 서로 공존하려는 자세입니다. 바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바다에 오염수를 방출한다면 바다는 오염된 물을 우리에게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방관, 외면, 묵인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꾸짖었습니다. 천국의 열쇠를 맡겨주셨던 베드로 사도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공정과 정의를 외면한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회개와 용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 받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의 전제는 치유 받고자 하는 간절함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느님나라에서는 더욱 기뻐할 것이다.” 진정한 회개 없이 나는 죄를 용서 받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용서를 돌아온 아들과 자캐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아들을 그리워하겠지만 용서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이 돌아왔기에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하였고, 잔치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빚진 것이 있다면 4배로 갚아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으로 보여 주었을 때 참된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 받았다.” 공정과 정의에 따른 용서를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용서를 청하기 전에 먼저 회개하는 결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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