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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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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18 조회수659 추천수8 반대(0)

1984103위 시성식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주례로 여의도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신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시성식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신청을 하면 교회는 가경자라는 이름으로 조사를 시작합니다. 교회는 면밀한 검토와 표징을 토대로 가경자를 복자품에 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복자품에 오른 분들에 대해서도 시간을 두고 기도한 후에 비로소 성인품에 올리게 됩니다. 교회의 시성식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특별한 표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한번 시성된 성인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 않고 공경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시성식은 면밀히 검토되어야 하고, 증언을 들어야 하고, 표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2014년에 124위 시복식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주례로 광화문에서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교황 방한 준비 위원회에서 일하였습니다. 124위의 복자가 성인품에 오를 때까지 우리는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한 치의 오차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해방이 되기 전인 1943년 먼 타국에서 사망하였습니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은 그분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그분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려하였지만 북한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분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였고, 대한민국 공군이 우리의 영공으로 돌아오는 유해를 호위하였습니다. 그분의 유해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고, 그분의 흉상은 다른 독립투사들과 함께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설치되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독립군들의 정신을 육군사관학교 학생들이 따르자는 취지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부는 홍범도 장군이 과거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흉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합니다. 그분이 공산당에 가입했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인 러시아와 민주주의인 미국은 연합국으로 같은 편이었습니다. 제국주의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때는 대한민국이 아직 해방되기 전이었고, 이념으로 세계가 양분되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훈장을 바란 적도 없었고, 흉상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같은 대한민국 정부가 정권에 따라서 훈장을 주었다가 취소한다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흉상을 만들었다가 철거한다면 이 또한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역사 앞에서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을 이야기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장례행렬을 보셨습니다. 슬픔에 찬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어둠에 빛을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첫째는 나 자신이 중심이 되려는 교만함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많은 죄악들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욕심을 먼저 생각한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둘째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열등감입니다. 지난날의 잘못과 죄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열등감은 우리를 영성생활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우리의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양털같이 희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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