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안에 비우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루카7,1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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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9-19 | 조회수20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023년 09월 19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내 안에 비우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복음(루카7,11-17)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 백인대장의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라는 그 말을 칭찬하신 바로 그 뒤에 들어가신 나인(헬라어-황폐한)이라는 고을(폴리스-산위에 도시), 곧 율법에 젖어있는 예루살렘을 뜻한다. 앞7장 1절에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와 같은 모습이다. 곧 율법에 젖어있는 나인이라는 고을이나 카파르나움(나를위한 고을, 성전)이나 모두 죽음을 향해가는 신앙의 고을, 성전이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 울게 한 일을 없애 줄 테니 ‘울지 마라’는 주님의 약속이다.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죽음을 멈추게 하는 손, 죽음에서 되살리시는 손이시다. 곧 새 창조다. (새 생명을 주시는 새 창조의 주님이시다.)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 죽이가 되살아나 말을 한다. 곧 ‘말 못하는 것이 죽은 것이다.’를 보여주심이다. 어떤 말일까? 앞7절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곧 말씀이 죽은 이를 살리신다는 그 ‘진리의 말을 할 줄 아는 이가 산 자’임을 성경은 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12절로 돌아가 보면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 성경은 외아들의 죽음을 자신들의 안위(安危), 평안(平安)을 위해 스스로 열성을 부리는 그 율법과 카파르나움의 선악(善惡)의 법, 그 두 법을 하나로 갖은, 곧 심판이 아닌 생명 하나로 갖은 하느님의 외아들(모노게네스-하나로 갖은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사람을 되살리시는 그 진리의 그리스도를 보여주심 이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내 뜻을 위해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예수님? 곧 대입 입시철에 묵주 100일기도하면 들어주시는 예수님? 우리의 안위와 평안, 건강을 위해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예수님?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복(福)주시는, 그 기복(祈福)신앙생활의 예수님을 믿으면 부수신다. (마태10,34-35)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 예수님은 우리의 뜻을 부수신다. 그리고 당신의 대속(代贖)으로 당신의 생명을 넣어 살리신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루가2,34)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 예수님의 대속, 그 죽음으로 죄의 저주에서 풀린 시메온의 고백이다.(창세49,5- 여호수아19,1- 참조) 곧 우리가 전(傳)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다. 우리의 뜻에서 쓰러지게도 하고, 하느님의 듯으로 일어나게도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 선택받은 이만이 믿을 수 있는 진리의 말씀 이야기, 곧 복음(福音)이다. * 신앙생활이란 하느님 앞에 나아가 영적인 씨름을 하는 것, 곧 하느님 통치 아래 순종하는 법을 배우며, 거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자신의 영성의 가난함을 울며불며 고백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의 통치아래서 신앙을 유지하는, 곧 거룩한 인생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느 틈에 세상의 것으로 만족해하며 안주하여 하느님과 나와의 정체성 그 깨달음의 치열함이, 내 문제가 아닌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된 것은 아닌지... 이 한 세상 살아가다 보면 나인성의 과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다양한 슬픔과 시련, 작은 죽음을 맛보며 살아간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기지 맥진한 삶 속에서도 신비와 희망이 공존한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 하느님- 창조주, 나-피조물, 곧 창조주의 죽음으로 피조물인 내가 사는 것. 하느님과 나와의 정체성이 아닐런지요. 우리, 나 자신의 스스로의 힘, 열심히는 살 수 없음입니다. ☨ 천주의 성령님! 나인과 카파르나움의 그 우리의 힘, 욕망, 이기심을 비워내시고 하느님 아버지의 힘, 생명, 사랑으로 채워 다시 살리심을 믿습니다.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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