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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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9-28 | 조회수30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루카 9,7-9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거울’입니다. 양심이 ‘그러면 안된다’고 한 일을 욕심과 집착에 눈이 멀어 ‘에라 모르겠다’하고 저질러 버린 죄책감과 후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기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면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습니다. 망가진 삶을 올바른 길로 되돌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카지노에는 거울을 걸어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 자신이 도박에 중독되어 삶이 피폐해졌음을 깨달을 것이고 적어도 그날은 도박을 그만두게 될텐데, 그렇게 되면 카지노의 입장에서는 손해이기에 거울을 다 치워버린 겁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에게도 육체적인 욕망에 눈이 멀어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던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고 조강지처를 내쫓았던 것이지요. 그러자 세례자 요한이 그래서는 안된다고 ‘입 바른 소리’를 했고, 자꾸만 자기 양심을 건드리는 요한이라는 거울이 불편하게 느껴진 헤로데는 제 입으로 내뱉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핑계로 그 거울을 깨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들을 고치고 마귀들까지 쫓아낸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그 소식을 들은 헤로데는 ‘몹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몹시 당황하는게 당연합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참된 예언자로 여기며 존경했던 세례자 요한을 자기 손으로 죽인 죄책감이 마음 속에 남아있는데, 하느님께서 그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지닌 ‘새로운 예언자’를 보내셨다고 하니, 혹시 자신의 죄를 심판하고 벌을 내리시기 위함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모든 것을 소유한 영주라고 할지라도 자기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값’은 돈으로 대신 지불할 수 있는게 아니라, 자기 삶과 목숨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그에게는 준엄한 심판관으로 여겨져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보고자 했던 동기는 다른 이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이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병을 고쳐보려는 간절함으로 그분을 만나려고 했지만, 그는 예수님이 ‘요한의 환생’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 두 눈으로 확인하여 마음 속 두려움을 덜어내려고, 또한 그분께서 얼마나 대단한 기적들을 일으키시길래 수많은 군중들이 그분을 따라다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겁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만나려는 동기가 ‘얕은 호기심’에 불과했기에, 그는 나중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서도 자기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간절함과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회개와 질병의 치유, 구원이라는 귀한 결실을 얻은 것과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만나를 먹고도 죽었던’ 선조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지금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다면, 세상의 방식으로는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주님을 만나뵈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주님의 뜻과 가르침에 비추어 내 삶을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움으로써 주님과 맺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해야만 하는 ‘구원의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인 겁니다. 그러니 이 귀하고 중요한 시간을 그저 호기심을 채우는데에 허비하지 말고, 주님을 내 안에 채우는데에 잘 써야겠습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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