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에서 읽은 베트남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낸 교황님 편지 한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사랑은 믿음의 척도이다. 그리고 믿음은 사랑의 영혼이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같은 동전의 양면임을 결코 잊지 말기 바란다(Love is the measure of faith, and faith is the soul of love, never forgetting that love for God and neighbor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런 주옥같은 말씀도 믿는 이들에게 희망의 표징이,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만세육창으로 시작하는 오늘 하루 기분이 나를 듯 상쾌합니다. 위 만세육창의 대상이야말로 저에게는 ‘감사의 대상’이자 빛나는 ‘희망의 표징’이 됩니다. 그러니 저절로 만세육창입니다. 만세육창후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의 전사, 희망의 전사다.” 고백도 빼놓지 않습니다. 눈만 열리면 희망의 여정중인 우리에게 희망의 표징이 되는 것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어제 도반이 보내준 강론 댓글도 저에겐 참 고마운 희망의 표징이 됐습니다.
“신부님, 수십년 동안 매일 강론 쓰시고 다른 신자분들과 나누는 것이 매일 하늘에 보물을 쌓으시는 것 같습니다.”
순수한 사랑의 행위들은 모두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요, 이렇게 희망의 표징이 되어 살아가는 사랑의 사람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만납니다. 희망의 표징이 되는 분들, 이보다 이웃에게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오랜만에 어제 수도원 주일미사에 참석한 반가운 분이 빈손으로 왔다 미안해 하길래 즉시 답했고 만족했습니다.
“자매님 자체가 최고의 선물이자 희망의 표징입니다. 다른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습니까? 참 성실히 아름답게 살아가는 좋은 분들은 그 자체가 참 좋은 선물이요 빈손으로와도 반갑고 기쁩니다.”
참으로 희망과 기쁨을 주는 분들 자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이런면에서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는 성인보다 더 좋은 하느님의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은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과 더불어 서방의 4대교부인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 예로니모 역시 우리에게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자 희망의 표징이 됩니다. 기념, 기억할뿐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성화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주님의 소망입니다. 희망의 표징이, 성인이 되라 불림받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성 예로니모! 그의 만 73세 동안 삶의 궤적을 보면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인, 역동적인 삶을 살았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교회 학자 성인으로 고고학자, 기록 보관인, 성경 학자, 도서관 사서, 도서관, 학생, 번역가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어 “히에로뉘모스” 이름 뜻은 ‘신성한 사람’이라 합니다. 성인은 오늘의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농담삼아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다”하니 그 비범한 면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어 성인은 로마에 가서 학업에 전념했고 다양한 지역을 여행했으며 열병을 앓다가 치유되자 은수자들과 4년동안 사막에서 기도와 고행, 공부에만 전념하며 은수생활을 합니다. 꿈속에서 예수님께 “너는 키케로의 추종자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꾸중을 들은후 회개합니다.
성인은 394년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연대하여 펠라기우스 파를 축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으며 사막의 은수자인 테베의 성 바오로 전기를 썼습니다. 은수자들과의 불화로 사막을 떠나 379년 안티오키아로 가서 사목직을 맡지 않는다는 전제로 바울리노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고 사실 평생 미사도 드리지 않았고 일체의 사목직도 갖지 않았습니다. 성인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와 교류를 가지면서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들을 라틴어로 번역합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성인들과의 활발한 교류입니다.
성인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로부터 신구약 성경 모두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대업을 맡아 391년부터 406년까지 무려 15년에 걸쳐 완성하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불가타 성경입니다. 한편 성인은 로마에서 성녀 마르첼라와 성녀 바울라등이 주축이 된 상류층의 미망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수도생활의 열정을 고취시켰고, 이어 이들과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본격적 수도생활을 합니다.
성녀 바울라와 함께 한 개의 여자 수도원과 세개의 남자수도원을 세웠고 성녀 바울라는 여자 수도원의 원장이 되고 성인은 남자 수도원의 원장을 하면서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수도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직접 강의도 합니다. 406년부터 419년 9월 30일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임종할 때까지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수많은 성경주석서를 남겼습니다.
말 그대로 성서의 사람이요 “성서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열렬한 사랑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동분서주(東奔西走) 정말 치열했고 가열찼던 성인의 구도여정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었고 우리에게는 부단히 분발케 하는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 즈카르야서의 즈카르야 예언자가 전하는 세 번째 환시가 우리에게는 희망의 표징이 됩니다. 그대로 파스카 주님의 은총을 미리 앞당겨 보여줍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 머무르리라.”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 옛날 환시를 통한 즈카르야의 예언을 파스카의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시켜 주시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이런 주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과 부활 예고를 알아듣지 못했으니 그 뜻이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고 묻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당시의 복음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어도 우리는 그 감추어진 뜻을 확연히 깨닫고 이해하니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어 당신이 바로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임을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빛나는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이 되어 살게 하시니 이웃에 이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새벽성무일도시 성인에 관한 아름다운 찬미가 두연을 나눕니다.
“성경의 하늘나라 푸른목장을
땀흘려 정성다해 가꾸신당신
여기서 모두에게 공급하셨네
백배의 풍요로운 영혼양식을
사막의 고요함을 갈망하면서
하느님 면전에서 늘깨어있고
육신을 괴롭히고 극기하면서
자신을 주성부께 바치셨도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