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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신앙은 ‘자기부정’부터; 지옥은 자기를 긍정하는 이들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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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30 조회수44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3년 가해 연중 제26주일

 

 

 

<신앙은 ‘자기부정’부터; 지옥은 자기를 긍정하는 이들의 것>

 

 

 

복음: 마태오 21,28-32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어째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지 알려줍니다. 구원은 ‘아버지의 뜻’을 따름으로 성취됩니다. 아기들은 누구의 뜻을 따를까요? 부모의 뜻을 따름으로써 두 발로 걷게도 되고 말도 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하여 세상에 살 수 있는 수준의 인간으로 자라납니다. 하느님 나라도 성체를 통한 당신의 사랑을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믿고 그리스도처럼 살려고 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세리와 창녀들까지 그리스도를 통해 회개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도 그리스도께로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32)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 그들을 나무라십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틀렸음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긍정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긍정은 자기 부정의 결과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긍정하려는 이들은 하느님을 금송아지로 만듭니다. 하느님까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좌신부를 할 때 세례식을 통하여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70대 할머니셨습니다. 그분은 전직 산부인과 의사셨습니다. 처음엔 낙태도 많이 하시고 그렇게 돈도 많이 버셨습니다. 그러나 벌을 받은 것인지 얼굴 반쪽이 마비되어 비뚤어지는 병에 걸리셨고 창피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 저절로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지내던 중, 아래층 한 교우 자매님이 위층 집에 전교를 왔고, 이런저런 모든 사정을 들은 그 신자분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세례식 때 휠체어에 앉아 있는 분만 찾았는데 그분은 다른 세례자들과 마찬가지로 걸어 나와서 모든 세례 예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건강하게 잘 살던 당신의 외아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남기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입니다. 저는 아들 생각을 덜 하게 만들기 위해 성경 필사를 하도록 권하였습니다. 오래 앉아 계시지도 못하고 눈도 안 좋으신 그 분은 18개월 만에 신구약 성경을 모두 필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하느님께 원망을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빨리 하느님 나라에 가서 아드님을 만나고 싶다고만 하였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래된 신자 부부가 똑같은 일로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찾아가서 달래봤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아드님을 잃은 아픔을 극복한 자매님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당신들이 옳은 것입니다. 

이렇듯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갑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왔던 고통을 알기 때문에 부정도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뱀이라는 자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라”는 단어는 “적극적으로 거절하고 부인하다”라는 뜻입니다. 좋은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뱀과 같아서 깜짝 놀라 혐오스럽게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긍정하면 하느님을 바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자기 긍정이 지옥의 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반면 자기를 부정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께 가까이 갑니다. 그 사랑만이 자기를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주님께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주시는 분 앞에서 무언가 드리고 있다는 파렴치한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벽이 있었습니다. 책을 판 돈을 마약과 술, 도박에 탕진하였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사람은 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도박 자금으로 줄 것이 없다며, 마지막으로 시집올 때 가져온 반지와 보석을 내어주었습니다. 원망한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착한 아내를 위해 새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자기 자신과 싸우기 시작하여 결국엔 도벽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로 알아봅니다. 교회에서 많은 회개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보고라도 핑계 대지 말고 믿읍시다. 신앙은 사랑을 받음이기에 자기 부정부터 시작합니다.

 

 

 https://youtu.be/dfupiXiU_mg?si=ojiDJ6eYPln7vfw3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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