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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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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01 조회수318 추천수3 반대(0) 신고

231001. 연중 제26주간.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

 
가을이 익어갑니다. 우리의 믿음도 익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전례> ‘회개의 행동’와 ‘믿음의 행동’에로의 초대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음의 뉘우침만 있는 회개가 아니라 ‘행실로 돌아오는 회개’와 말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행하는 믿음’에 대한 촉구입니다.

<제1독서>는 그릇된 견해로부터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를 당하게 되자,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신들을 벌하시는 하느님은 공정하지 않고 복수심이 많아 자신들을 멸하신다고 여기고 불신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에제케엘 예언자를 보내시어 그들을 그러한 그릇된 견해로부터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냐?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에제 18,27.32)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의 불화에 대한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예수님의 낮춤과 순명의 삶을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대한 순종으로 누리시는 영광을 필리피 신자들이 깨닫기를 촉구하며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이지 그 상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는 수석사제들과 원로 백성들의 재정수입과 권위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 추궁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권위에 대해 반문하시고 이를 대답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는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싫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지만 일하러 간 아들과,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서도 일하러 가지 않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석사제들과 원로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예수님께서는 ‘누가 “예”라고 응답한 사람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산상설교”의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아버지의 뜻”은 “예”라는 응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응답에 따르는 ‘순명의 삶’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 당신의 양식’(요한 4,3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야고보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26)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계명을 매일 행동으로 채워라.”(4,63) 하시고, 창설자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인은 ‘실행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며, 말한 바는 모두 실행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실행’에 대한 주제를 대할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니, 히틀러 암살에 연루되어 처형된 예언자적 신학자인 본회퍼입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은 행위 속에서만 믿음일 수 있다.”
 
비유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너무도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존경받는 이들이었고, 직업적, 형식적으로 이미 부르심에 응답한 의인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의 잘못보다 남들의 허물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와 창녀들은 그 당시 천시를 받던 이들이었고, 드러난 자신의 죄를 항상 부끄럽게 여기며 사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남들의 허물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 곧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들과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는 죄인들이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교종은 이런 풍자를 들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면, 놀랄 일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기 같은 죄인이 천국에 오다니 하고 놀라고, 둘째는 교황, 주교, 신부들, 독실하기로 유명했던 신도회장들이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놀라고, 셋째는 평소에는 소위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천국에 많이 와 있는데 놀란다.”
 
이러한 말씀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마태 21,32) 끝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겠느냐?”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주님!
당신의 뜻을 제 양식으로 삼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게 하소서.
응답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실행으로 믿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당신 말씀에 따라 생각을 바꾸고, 당신 의로움을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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