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道) (루카9,51-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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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10-03 | 조회수15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율법의 본거지(本據地)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道)
복음 (루카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하늘에 오르는 길이 예루살렘,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곧 율법(律法), 그 옛 계약의 심판(審判)으로 죽어야 할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로마,20 야고2,10 갈라,10) 율법이 요구하는 죗값을 치루시고 믿는 이들에게 의로움을 전가(傳家)시켜 주시기 위해(로마,21-24 히브7,18-19) 저주(詛呪)의 십자가(十字架)에 대신(代身) 달리시러, 곧 대속(代贖), 그 희생의 제사의 제물(祭物)이 되시기 위해 율법의 본거지(本據地)인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다. *율법(律法)- 옛 계약 ☞ 첫 번째 것. *십자가(十字架)- 피의 새 계약 ☞ 두 번째 것.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 사마리아, 북 이스라엘로 세상의 힘을 추구했던 그들은 이방(異邦) 강대국(强大國)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피가 섞여 세상화(世上化)가 되어 하느님의 뜻(구원)을 떠난 이들이었다.
⁜ 사제(司祭)께서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聖殿)만을 자신들의 유일한 성전(聖殿)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네들이 그리짐 산에 세운 성전(聖殿)에서 예배(禮拜)를 드렸다. 유다인들은 사람리아인들이 혼혈(混血)민족인 동시에 혼합(混合)종교를 신봉(信奉)한다고, 그들과 상종(相從)하는 것을 꺼렸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종교(宗敎)를 업신여기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모든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巡禮)를 가는 축제(祝祭)기간 중에는 이러한 반감이 더욱 고조 되었던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이나 유다인들이나 자신(自身)들의 뜻을 위한 신앙(信仰)을 고집(固執)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과 달리 하느님의 뜻을 청(請)하는 신앙(信仰)을 사는가?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 예수님은 죄인들을 살리시려 가시는 길이시기지, 죽으러 가시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요한3,17) 하늘에서 불이 내리면, 아직 진리(眞理)가 되지 못한 제자, 자신들부터 다 죽었을 것이다. 지난날 나를 보는 듯하다. 진리(眞理)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한 행위로 찐(참)신자(信者)로 자처했던 내 모습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十字架)의 길(道)이 구원(救援), 생명(生命)의 진리(眞理)인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 구원의 약속, 계약이다. *계약(契約)- ‘스타오로스’ ☞기둥, 십자나무. 그 하느님의 계약(契約)인 십자나무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진리(眞理)로’ 받아들여 그분과 한 마음이 되었을 때 하늘(진리)이 되었다 말한다. 기적(奇蹟)과 능력(能力)의 예수님을 믿는 것을 진리라 하지 않는다. 하늘 아래, 우리의 모든 것이 허무(虛無)요 헛된 것임을 깨닫고, 하늘 위, 하느님께만 참(진리)이 있음을 깨닫고, 믿으며 청(請)하는 것, 진리의 삶이다.
(요한3,3.5) 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하늘 위의 물과 성령(聖靈), 모두 진리(眞理)로 하느님의 말씀과 영(靈)으로 살아남, 새로 태어남이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 그러니까 하늘 아래 율법(律法), 그 옛 계약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불가능한 죄인(罪人)인가를 깨닫고 인정하는 자기(自己)부인(否認)의 신앙을 살아야하는 것인지, 옛 계약(제사, 윤리, 교리)의 신앙으로 몇몇 가지를 지켜놓고는 신자(信者)인냥 하면 불의(不義), 위선(僞善)이다.(야고2,10 이사1,11-14)
(갈라3,22-25)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교리(敎理), 그 옛 계약의 신앙(信仰)을 산다는 것은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이 주시는 하늘의 복(福, 용서, 의로움, 안식, 자유, 생명, 평화)에 관심이 없거나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절(루가9,57-이하)이 그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 영원한 보호자,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천주의 성령님! 세상과 짝하는 삶이 영원한 어둠의 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진리가 되어 하늘의 자유, 안식, 평화, 그 빛의 삶을 현세에서부터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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