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4.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오늘 <복음>에는 대조되는 세 인물과 그에 따른 예수님의 세 가지 태도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따라라”하는데,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되돌아보는 자는 하느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라나서겠다는 사람은 내치는가 하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집에 다녀오겠다는 이는 가지 못하게 하고,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겠다는 이에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참된 제자 됨의 가르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사람>을 내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설익은 고백을 깨우치면서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낮고 겸손한 삶에로 부르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이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사람>에게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도록 허락하지 않은 것’ 역시, 당신을 진정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곧 당신의 제자는 죽음의 나라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늘나라를 더 앞세우는 이라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또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도록 해 달라고 하는 <세 번째 사람>에게는 ‘대체 무엇을 “먼저” 앞세워야 하는 지’를 깨우쳐줍니다. 곧 인간의 일보다 하느님의 일을 앞세우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요, 그 아무 것도 그리스도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 됨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무엇보다도 ‘앞서 먼저’, 자신의 ‘머리 위에’ 그리스도를 두고 사는 일입니다.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 이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뒤를 돌아다보지도 말며, 오로지 임을 향하여 진리를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제자 됨은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 본질인지, 무엇이 우선적이고 무엇이 부차적인 것인지를 잘 아는 일입니다. 그것은 거처를 지상에 두지 않는 삶, 곧 순례자요 거류민으로의 삶입니다. 자신의 편리와 안정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떠돌이로서 불투명한 삶에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믿음을 하늘에 두고, 땅에서 자신이 가난해지고 보잘 것 없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사는 일이요, 죽음의 나라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게 하늘나라를 앞세우는 일입니다. 거처할 곳이 묻혀 썩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느님과 더불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대체 어디에 머리를 두고 있는가?”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주님!
제 몸이 당신 밭에 머물게 하소서.
제 손이 당신 말씀의 쟁기를 잡고 진리의 밭을 갈게 하소서.
당신은 저의 탯줄, 저의 보금자리, 저의 무덤이오니
제 머리가 항상 당신 가슴에 기대어 있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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