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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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0-09 | 조회수23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루카 10,25-37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그의 열의는 좋으나 그는 한 가지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무엇을 함’으로써, 다시 말해 스스로의 행실을 통해 구원을 당연한 대가로 얻어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 행위에 달려있는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매여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집중하며 그런 존재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는게 중요하지요.
다행히 그는 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분 자녀라는 존재로 변화되어야 함을 알았던 겁니다. 그러나 그 답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재고 따지는 일’에 집중합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함을 알았다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될 것을, 굳이 ‘누가 자기 이웃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렇게 묻는 의도는 뻔했지요. 이방인들은 빼고 자기 동포들만 사랑하겠다는, 자기가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을 최소한으로 규정함으로써 그에 따른 수고도 줄여 보겠다는 옹졸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겠지요.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신 ‘사람’이라면 인간적인 조건들과는 상관없이 다 나의 ‘형제’들임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웃으로 삼을 사람과 그러지 않을 사람을 굳이 구분하는 이유는 그 마음 안에 욕심과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골라서 사랑하겠다는, 그래서 그 사랑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겠다는 지극히 계산적인 태도입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오늘 복음 속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을 닮았습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 앞에서 ‘머리’가 먼저 반응하는 이들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강도를 당한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괜히 ‘주검’에 몸이 닿았다가 부정하게 되면 종교 지도자로서 공동체에서 해야 할 역할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테니 신중해야 한다고도 생각했겠지요. 그 결과 길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그 사람에게서 최대한 멀리,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 앞에서 ‘마음’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는 그를 보자마자 ‘가엾은 마음’이 듭니다. 자비와 사랑이 넘치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지니신 바로 그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갑니다. 아직 숨이 붙어있다면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이미 죽었다면 길에서 비명횡사한 그 불쌍한 이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지내주면 될 일입니다. 그 과정에는 ‘율법’도 ‘계산’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그는 숨이 붙어 있었고 사마리아인은 지극정성으로 그를 치료하고 보살펴줍니다. 그 정도만으로 충분할텐데도 자기 볼일을 위해 떠나면서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며 그를 돌봐달라고 부탁하지요. 두 데나리온이면 자기가 꼬박 이틀을 일해야 손에 쥘 수 있는 큰 금액입니다. 그는 자기와 일면식도 없는 ‘남’의 미래까지 돌보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재산에 더해 시간까지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자기 미래를 계산해가며 지금 자기 눈 앞에서 죽어가는 병자를 방치하고 떠난 앞의 두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누가 나의 이웃이고 누가 나의 적인지를 구분하는 일에만 열을 올리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먼저 다가가 최선을 다해 그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야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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