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1.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루카 11,2)
‘기도’는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도를 “욕망의 해석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십계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님의 기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수 있는 것을 모두 청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청해야 할 것을 순서대로 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도는 청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서까지도 형성시켜준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욕망을 훈련시켜 하느님의 목적과 조화를 향하도록 변화한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기도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 안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예수님이 담겨 있습니다.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담기기를 바라시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문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것들이 수정처럼 농축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비록 짧지만,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근본과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참으로 복음 전체를 요약한 것이다.”
사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준 기도’로서, ‘예수님의 기도’라는 사실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기도드리게 됩니다. 그러니 이 기도의 배후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함께 동행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드님을 통하여, 비로소 ‘아버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처럼, 이 기도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선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합니다. 곧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고 하느님이 되게 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고귀한 기도인지요?
사실, 올바르게 사는 것은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 4)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제 마음을 드리게 하시고 당신께 속한 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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