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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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0-14 | 조회수33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루카 11,27-2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평생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아들의 뒷바라지만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다행히 그 아들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하여 풍족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었지요. 아들의 그런 성공이 어머니에게는 자기의 성공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들의 삶 하나 하나에 집착하며 간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어머니의 존재가 불편하고 부담스럽습니다.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감사하긴 하지만 아들에게는 아들의 삶이 있고, 어머니에게는 어머니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들이 아무리 크게 성공하더라도 어머니의 마음은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삶이 없으면 자기 행복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과 삶을 찾아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참된 행복을 주시는 분과의 관계 안에 깊이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께 이렇게 소리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참된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신적인 권능으로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시는 그분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보였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그 동경이 곧 그런 잘난 아들을 둔 어머니에 대한 부러움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저런 대단한 아들을 둔 엄마는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어머니로서 자기 자식이 성공하여 잘나가는 것도 큰 행복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전부’도 아니고 ‘최고’의 행복도 아닙니다. 타인을 통해 ‘간접체험’하는 것으로는 행복이 주는 참된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기에 적극적으로 ‘나의 행복’을 찾아야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그녀가 간접적인 행복,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안주하지 않고 더 고차원적이고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이끄시려는 겁니다. ‘아들이 성공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떤 조건을 채워서 행복해지려고 하면 행복을 ‘간접체험’하는 것으로 그칠 뿐이지요. 참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자기가 행동하는 것 자체에서, 자기 삶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고 누려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이 바로 당신 자녀인 우리가 삶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일이니, 그분 말씀을 잘 듣고 지키기만 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행복들을 온전히,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성모님께서는 열 달 동안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을 당신 태중에 품고 다니셨고, 출산 후 30년 동안은 그 말씀을 당신 마음에 품고 철저히 순명하고 따르며 사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에 있어서 성모님보다 더 큰 사람은 없지요. 즉 성모님이야말로 간접적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궁극적인 행복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신, 참으로 행복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 성모님을 본받고 따라야 합니다. 세례 받았다는 사실에, 구원 받을 가능성이 생겼다는데에 안주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서 완전한 행복,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신앙생활에 정진해야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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