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7.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어떤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에 일어난 일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당혹스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루가 11,38).
왜 그렇게 놀랐을까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의식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위생상의 관습이나 예의였을 뿐 아니라, 나아가 세상과 접촉함으로 인하여 생기는 불결을 제거하기 위한 정결례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셨기 때문에 그들은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는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루가 11,39)
이는 진정한 ‘정결례’는 겉을 씻는 일이 아니라, 속을 씻는 일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음식에는 “착취와 사악이 가득 차 있다.”(루카 11,39)고 하십니다. 이는 단지 속을 씻는 일이 겉을 씻는 일보다 낫다는 것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속에 담고 있는 것을 정당하게 취득한 것인지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곧 불의와 착취, 부정과 탐욕, 이기와 사악함을 동시에 질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속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 또 그것들을 어떻게 채웠는지, 왜 채웠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단지 이러한 사실을 깨우쳐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깨끗해지는 방법도 말씀해 주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
이처럼, 더러움을 비워내는 길, 깨끗해지는 길은 형제와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착취와 사악으로 가득 채운 속을 비우는 방법은 바로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정결법이라는 율법의 본래의 정신이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곧 ‘정결법의 정신’은 깨끗하게 씻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습니다. 그러니 속에 있는 것을 비워낸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비워지고 깨끗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 안에 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2코린 4,7) 으로 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그러니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놀랍고 신비로운 것은 그 사랑을 베풀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를 명심해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1)
주님!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소서!
탐욕으로 채운 것을 사랑으로 나누게 허소서!
제가 온전히 깨끗해지고, 당신 얼굴 뵙게 하소서!
제 속에 당신의 뜻을 품고, 당신의 향기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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