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정신 습득(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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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3-10-19 | 조회수20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전례정신 습득(2) 아무튼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계의 지배자로서 하느님을 섬겨야 하며 전례의 상징적인 도구들과 표현들은 고상한 목적을 수행하는데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전례의 외적 표징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대로 하느님의 것에 대해 묵상하고 깨달음으로 이해를 가질 때 전례를 통해 풍성한 은총을 얻을 것입니다. 이처럼 전례에는 상징적인 도구나 간접적인 표현외에 직접적인 표징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례 기도문들은 거의 대부분 성서에 있는 내용들이며 그 중에서 시편은 특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서를 보면 예수님도 얼마나 많이 구약성서를 인용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것은 전례에 사용된 성서나 특히 시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내용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거나 자의적인 해석을 해서는 안되며 교회의 권위로 풀이한 해석이나 비유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주의할 것은 구약의 본문들을 신약에 비추어 해석하는데 있어서 각자가 자기 주관이나 느낌대로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저술된 시대의 역사적 환경과 풍습과 언어와 문맥 등을 적극 고려하여 상징적으로나 비유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마음대로 해석한 집단이나 개인으로 인해 우리 교회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격었으며 수없이 많은 분쟁과 분파를 가져왔는지를 보면 그 위험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뱀의 꼬리를 보지 않은 사람은 뱀이 머리와 몸통만 있다고 주장 할 것이고, 고양이의 발톱을 보지 않은 사람은 고양이는 절대로 발톱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학술적인 해석이나 느낌대로가 아니라 전체가 의미하고 지향하는 것과 교회가 여러세기를 통해 교회의 이름으로 해석한 바를 삼위일체의 신비처럼 받아 들여야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석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해석의 두번째 단계는 전례에 사용되고 있는 성서의 내용을 현대생활, 특히 각자 개인의 생활과 결부시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다양한 일이우리의 생활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신앙에서 요구하는지표에 대한 목적 의식을 굳히는데 이러한 해석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미사경본에 실려있는 복음이나 독서의 내용을 현대생활에 결부시켜 나갈 줄 모르는 신자는 결국 거룩한 성교회 전례의 본질과 전례가 지향하는 목적의식을 절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전례가 공연히 복잡하기만 하고 지루하기만 하여 전례적인 시간이 몹시 피곤하기만 할 것입니다. 성교회가 미사 전례에서 복음을 들려주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지식을 넓히고 깊은 견문을 넓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음으로써 신앙적으로 복음서에 실제적으로 등장하는 죽은자들이나,벙어리, 귀머거리, 예수님의 활동이나 사도들의 활동이 모두 현대를 사는 우리 각자를 의미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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