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정신 습득(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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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3-10-22 | 조회수18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전례정신 습득(5) 그리스도 신자는 거룩한 전례로 인해 칠성사의 신비스러운 효력으로 신비체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전례의 칠성사가 이처럼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사제를 통하여 성사의 효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사는 결코 인간적인 냄새가 전혀나지 않습니다. 아니 없습니다. 더우기 사제 개인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결점이나 능력과도 무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제가 고백자의 죄를 사해줄 때에는 개인적으로 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사제가 결점이 많다 하더라도 사제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해주는 효력은 언제나 유효한 것입니다. 미사 때 밀떡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도 사제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이 약속하신 결과에 의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전례 정신에 더 확고하고 참되게 생활하는데 있어 전례의 공동체적인 정신과 박애정신을 개인적 기도 생활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과 항상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전례적인 기도를 본 받아 개인적인 기도일지라도 참된 기도를 드려야 된다는 것과 성사적인 생활이 기계적이기 보다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할 때, 올바른 신앙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교회의 거룩한 전례의 핵심적인 정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를 새롭게 거행하는 미사성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은 그리스도를 본 받고 따르는 수덕생활의 핵심적인 정화도 희생정신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루까 12,49-5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일생을 통해 십자가 상의 희생제물이 되실 것임을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갈망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참하게 죽어야만 된다는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과 일치하여 그분의 희생의 한 부분에 참여함으로 헌신적인 생애를 보내고 임종시에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바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례정신 생활의 최후 목적이자 또 수덕생활의 최고 정점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헌신적으로 흔들림없이 우리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일생의 일이며 최후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례를 온전히 이해하고 참된 전례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곧 세상의 빛이시요 착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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