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깨어 있어라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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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0-24 | 조회수29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행복하여라, 깨어 있는 종들!-
“깨어 있어라.” 우리 문도미니코 수사님의 종신서원 상본 성구이기도 합니다. 요셉 수도원 성전 뒷면 양쪽에도 깨어 있음을 상징하는 환히 빛나는 눈을 지닌 커다란 올빼미 그림이 걸려 있고, 제의실 방에도, 제 집무실에도 늘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지닌, 깨어 있음을 상징하는 필란드 흰 올빼미 도자기 작품이 놓여져 있습니다.
영성생활의 궁극목표가 깨어 있음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깨어 있는 삶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평생 끊임없이 계속되는 공동체의 전례기도도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는 공동체의 일치요 깨어 있는 삶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쁨입니다. 깨어 있음은 은총입니다. 깨어 있음은 순수입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겸손입니다. 깨어 있음의 평화입니다. 깨어 있음은 진실입니다. 깨어 있음의 일치입니다. 깨어 있음은 행복입니다. 깨어 있음은 훈련입니다. 깨어 있음은 인내입니다. 깨어 있음은 준비이며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의 은혜가 끝이 없습니다. 막연한 깨어 있음이 아니라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을 기다릴 때 항구히 인내하며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깨어 기다림의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한 두 번의 깨어 있음이 아니라 늘 한결같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언제 어디서 주님이 오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깨어 살 때 맑고 향기로운 삶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제가 특히 좋아하는 전례기도서 3시경 찬미가 2절에서 소개되는 주님입니다.
“진리여 사랑이여 목적이시여, 우리의 다함없는 행복이시여, 주님을 사랑하고 믿고바라며, 주님께 도달하게 하여주소서.”
이런 주님을 기다리기에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깨어 기다릴 때 오늘 지금 여기서 만나는 살아 계신 주님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을 주님으로 바꾸면 실감나게 이해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믿는 모든 이들이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을 것을 촉구하는 주님의 명령이요 짧지만 강렬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흡사 영혼의 등불을 환히 켜들고 깨어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주님의 당부말씀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행복하여라, 깨어 있는 종들!” 여기 또 행복 선언이 나옵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이들이 바로 참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나오는 주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신 겸손한 분임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분은 바로 우리를 시중들러 오신 겸손한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평상시 깨어 주님을, 형제들을, 겸손히 섬기며 오실 주님을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며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를 너무 잘 아시며 오실 때 이런 우리를 식탁에 앉히신 다음 시중을 드신다 합니다.
얼마나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장면인지요! 바로 우리가 오매불망, 순수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깨어 기다리는 분은 이런 겸손하신 주님이십니다. 겸손하신 주님은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해 분명히 잘 드러납니다. 한 사람 아담과 한 사람 그리스도와의 비교입니다. 참으로 한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요!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입니다. 아담의 실패를 순종으로 일거에 만회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주시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주님입니다. 이런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분발하여 깨어 있게 합니다. 언젠가 오시는 주님이 아니라 날마다 미사를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형제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늘 깨어 기다리는 삶이 절대적입니다. 이래서 깨어있음의 훈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요즘 널리 시행되고 있는 향심기도, 비움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의 수행이 목표하는 바도 바로 이런 깨어 있는 삶입니다. 저 역시 늘 호흡에 맞춰 성구를 되뇌이며 오전, 오후 30분씩, 명상기도를 수련해오기 30년이 넘었습니다. 참으로 깨어 있음의 훈련에 좋은 기도들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생 바치는 공동전례 미사와 시편 성무일도 역시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깨어있음을 위한 참 좋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는 영성훈련에 충실할 때 건강한 영혼, 건강한 정신, 건강한 마음입니다.
“깨어 있어라!” 늘 깨어 살 때 참행복입니다. 깨어 살 때 늘 영원한 오늘, 영원한 현재를 삽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깨어 지낼 날은 오늘입니다. 오늘 깨어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이니 걱정은 저절로 내려놓게 됩니다. 일일일생 하루로, 일년사계로, 우리 인생 여정을 압축하면 현재의 시점이 나오고 더욱 분발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제 경우를 보면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로 압축하면 시점時點은 오후 4:30분,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하면 시점時點은 초겨울, 이런 확인이 죽음도 머지 않았다는 자각과 더불어 깨어 있는 삶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이 또한 깨어 살기 위한 참 좋은 실제적 수련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리며 살도록 용기와 힘을 주십니다. 다음과 같이 깨어 기다리다 주님을 맞이하는 행복한 종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12,38).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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