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21. 예수님 사명 / 상경기[3] / 공관복음[96] | |||
---|---|---|---|---|
이전글 | ■ 택시와 강아지 / 따뜻한 하루[226] |1| | |||
다음글 | 『주님의 말씀편지』- [†2023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일](경천애인(敬天愛人) |2| | |||
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0-28 | 조회수12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1. 예수님 사명(마태 10,34-36; 16,1-4; 마르 8,11-13; 루카 12,49-56) / 부스러기 복음[96]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을 지르러 왔다. 이는 예수님의 다급하고 절박한 외침이다. 이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불’은 본디, 종말론적 장면에서 하느님의 심판 때에 나타나는 불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성령에 의한 세례와 성령 강림 때에 나타난 불을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당신의 지상 순례의 사명인 회개를 그토록 외치지만, 그 반응은 만만찮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 그 십자가의 순교를 상기하면서 성찬의 전례에서 행할 고통의 ‘잔’에 담길 물이 연상된다. 불과 물이 심판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내리는 심판 대신에, 당신 자신에게 미치는 심판을 한탄하신다. 고통 뒤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지만, 육신의 고통을 생각하시면서 탄식하신다. ‘짓눌릴 것인가?’ 괴로움과 번민의 표현이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곧 구세주로서 수행하셔야 할, 아버지에게 부여받은 당신 사명의 완수를 생각하시며 마음을 졸이시는 것이다. 그래서 분열을 일으키러 왔단다. 그것도 ‘칼’을 들고서. 회개를 통해 당신이 주시는 평화를 받으면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갈 것인지, 거짓 예언자를 따라 당신이 드신 칼 맛을 당할 거냐이다. 이는 당신께서 가져오시는 평화가 거짓 예언자들이 꿈꾸던 물질적이고 손쉬운 평화가 아님을 뜻한다. 그러기에 당신께서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신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나.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는 것이라나.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는 거다. 그러기에 칼과 평화를 선택하란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정의 분열은 예언 전통에서, 세상 종말에 일어나는 환난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의 표징을 분명히 알아보라신다. 회개의 절박성에 관한 일련의 가르침이다. 심판 이전에 믿음을 바로잡도록 시간을 더 주니 분명히 화해와 회개를 거듭거듭 말씀하신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사실 팔레스티나에서는 비구름이 지중해인 서쪽서 온다. 그리고 사막이 있는 동쪽이나 남쪽에서 바람 불면 더워진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이 당신을 시험하려는 표징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당신의 사명을 강하게 역설적인 비유를 드시면서 주장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징은 분별하지 못한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회개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평화를 받고자, 그분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다.[계속] [참조] : 이어서 ‘22. 회개의 절박성(마태 5,25-26; 루카 12,57-13,9)’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시대를 안다면, 늦기 전에 화해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