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1. 모든 성인 대축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 5,12)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잘 익어 가는 11월의 가을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축복과 자비가 잘 익어 ‘성덕’의 열매가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정녕, 가을은 하나의 변화의 극점입니다. 자신을 찬란하게 꾸며오던 일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는 일에로의 건너감입니다. 그것은 붙들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구는 낙엽처럼, 매여 있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영의 이끄심에 끌려 다니는 일입니다. 임을 찾아 바삐 달리던 일에서, 찾아 만난 임과의 속삭임에로의 건너가는 일입니다.
이제는 뒹구는 낙엽처럼,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를,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를,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기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비워지고서야 타인의 존귀함이 보이고, 허물을 뒤집어쓰고서야 자신이 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이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주님을 주님 되게 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주님 안의 자신과 홀로 고독할 줄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동체에 힘입어 살아왔다면, 이제는 공동체에 거름으로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입니다.
그것은 ‘가난을 사는 일’입니다. 이미 그분을 차지한 까닭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할 것입니다.
그것은 ‘슬퍼할 줄을 아는 일’입니다. 자신과 세상의 죄를 슬퍼하되, 자비 안에서 위로를 받고 기쁠 것입니다. 이미 깨어, 항상 임을 바라보며 기도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유해 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진정 있어야 할 하느님 품에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감미로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일’입니다. 곧 그분 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을 극단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미 주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손길에 매만져진 까닭입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영에 끌려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고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정,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이토록 우리는 복된 삶에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권고 문헌’인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 5,12)에서 “모든 이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의 사명입니다.”(9항)라고 밝히셨습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 제4장 62절의 성구를 새겨봅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성인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말고, 참으로 성인으로 불리어지도록 먼저 성인이 되십시오.”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주님!
제가 가난을 살게 하소서. 비록 ‘쓸모없는 종’이지만, 당신 앞에서는 부유하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이 제 가슴에 부어지게 하소서.
온유하게 하소서. 겸손하고 양순하신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소서. 당신 외에는 결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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