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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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11-02 | 조회수476 | 추천수5 | 반대(0) |
휴가 중에 동창 신부의 사제관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 동창 신부님이 고마웠습니다. 몸이 쉴 수 있는 잠자리도 고마웠지만, 서재에 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며칠 지내면서 ‘노자의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읽었습니다. 노자 제2 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착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가지고 못 가짐도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 어렵고 쉬움도 서로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 길고 짧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 악기 소리와 목소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어울리는 것. 앞과 뒤도 서로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 따라서 성인은 무위(無爲)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수행합니다. 모든 일이 생겨나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나 가지려 하지 않고, 할 것 다 이루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공을 쌓으나 그 공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이라는 기준을 정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였습니다. 율법과 계명이라는 기준을 정하였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원칙과 기준이 있습니다. 성공, 재물, 권력, 명예라는 기준입니다. 그 탑에 오르기 위해서 앞서가는 사람을 끌어내리기도 하고, 따라오는 사람은 밀쳐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성공과 발전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한 ‘도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염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바다에 버립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을 총과 칼로 빼앗기도 합니다. 같은 조상을 모시고 있으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죽고 죽여야 하는 전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의 법으로 단죄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삶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과는 달랐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 같지만 그 위에 싹이 나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서 직선으로 나가는 것 같지만 시간은 기억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 순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리적인 시간에 우리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치와 의미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위령의 달에 우리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들의 시간이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매년 순환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속에 죽은 이도, 살아 있는 이도, 앞으로 살아야 할 사람도 모두 함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선과 악,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은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수님께는 안식일과 율법 그리고 계명은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신앙은 편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나의 기준과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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