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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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1-06 | 조회수16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루카 14,12-14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식사’(食事)를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로 여겼습니다. 식사 할 때에는 포크나 나이프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 손으로 음식을 먹었기에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 것이 중요한 관습법이었습니다. 식사 전 후에는 반드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별도의 접시 같은 것에 따로 덜어서 개인적으로 먹는게 아니라, 큰 그릇에 빵이나 요리가 담겨 나오면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따라서 몸이 더러운 사람, 병에 걸린 사람, 죄를 지어 부정해진 사람과는 같이 식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 식탁에 앉아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아끼고 신뢰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친교의 장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기왕이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지위가 높은 귀한 사람, 자신이 존경하는 대단한 사람, 물질적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초대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한 바리사이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들은 철저하게 “give and take”의 원칙에 따라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손해를 끼칠 것 같은 사람과는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통해 뭔가 얻거나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관계맺음도 식사도 가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계산’이고 ‘거래’였습니다.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한 것도 그분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었지요. 그 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계셨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give and take”라는 거래의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어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돌려받기 위해 하는게 뻔히 보이는 계산적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받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나 감사 같은 울림을 주지 못하지요. 나라는 사람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해주고,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며,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두 팔 걷어부치고 기꺼이 나서게 만드는 그 어떤 ‘공로’도 남기지 못하는 겁니다. 또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현세적 보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나누고 베푼 모든 것은 원래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니, 그에 대한 보답도 내가 아니라 그분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나누고 베푼 집사가 누구에게, 무엇을 당연한 듯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집사로서 일한 수고와 보람은 주님께서 알아주실테니 그저 그분 뜻에 맞게 성실하게 일할 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보답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내가 나누고 베푸는 것들이 거래를 위한 대금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그분께 바치는 ‘예물’이 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행실대로 갚으시는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갚아주십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거나 사라질 세상의 허무한 것들로 말고, 우리를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줄 영원하고 참된 은총의 선물들로 우리 삶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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