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27. 끝자리에 앉아라 / 상경기[3] / 공관복음[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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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1-06 | 조회수17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7. 끝자리에 앉아라(루카 14,1-14) / 부스러기 복음[102] 예수님께서 어떤 바리사이의 집에서 식사하신다. 그들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도 하고, 그 자리에서 헤로데의 살해 위협을 미리 알려 주기도 한다. 이는 예수님께 다소 호의적인 바리사이들이 있었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역사적 현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사실 초창기 그리스도교와 바리사이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 때문에, 이들이 조직적으로 예수님의 적대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만은 그래도 바리사이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다소 있다. 아마도 이는 바리사이였음을 자랑스럽게 여긴 바오로의 영향일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요행히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그들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속으로는 다음을 기약하는 그 어떤 다짐을 했을 수도. 이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상석을 좋아하는 율법 학자들을 나무라신바가 수차례나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부지기수로 있을 게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마치 사회생활의 요령을 가르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스스로 높이는 이는 낮추어지고, 스스로 낮추는 이는 높여질 것이라나. 이는 바리사이들의 교만한 자신감을 단죄한다는 말씀이다. 이런 당대의 지도자급인 여러 율법 학자의 위선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수도 없이 훈계처럼 말씀하셨을 것이다. 어찌보면 지혜가 담긴 문장이라는 성서적 의미를 다분히 지닌 교훈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뜻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계급과 신분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에 반하여, 이번 바리사이의 집에서는 그나마 겸손을 가르치시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일상적 관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을 하라고 권고하시는 뜻으로 단도입적으로 한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사실 여기에 열거된 불우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의 몇몇 구체적인 부류일 따름이다. 그리고 당대의 어떤 학자들, 또는 유다교 일부에서도 죄인들의 부활은 믿지 않은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의인만이 아니라 죄인의 부활까지 말한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는 우리 역시 의인들과 함께 참 생명을 누리도록 ‘작은 이’사랑에 매진하면서, 공동선 지키기에 함께해야 할 것이다.[계속] [참조] 이어서 ‘28.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 22,1-10; 루카 14,15-24)’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성경에서 혼인은 가끔 하느님과 유다인의 기쁜 만남의 상징으로 부름에 응하는 표징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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