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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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1-08 | 조회수204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루카 14,25-33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바둑 용어 중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규모의 집싸움에서 점수를 좀 더 얻겠다고 욕심부리다가 수를 잘못두어 그 판 전체의 승리를 상대방에게 내어주는 모습을 가리키지요. 바둑은 집싸움이라는 작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판세를 잘 읽고 적절하게 대처하여 승부라는 큰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작은 것을 얻는데에 연연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악의 세력과 치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묘수’를 알려주십니다. 그 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무소유’라고 할 수 있지요. 걱정되고 불안하다고 소유에 기대면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느라,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하고 연연하느라 정말 중요한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에 기대지 말고, 나의 삶과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존재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분의 존재에 기대어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러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첫째, 자기와 가까운 가족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진짜로 소중한 이를 마음으로 증오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먼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인간관계에 애착하는 마음을 비우라는 뜻입니다. 둘째, 제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란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감당하게 되는 시련과 고통을 의미하지요.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쉽고 편한 삶을 쫓는 인간적인 나약함과 나태함을 비우라고 하시는 겁니다. 셋째, 자기 ‘소유’를 다 버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쌓아올린 모든 걸 버린다는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을 안겨주지요.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두려움과 절망을 당신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순명으로 승화시키라고 하시는 겁니다.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비워야만 주님께 ‘올인’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기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책이나 계획도 없이, 무작정 당신께 투신하라고 요구하시는 건 아닙니다. 그런 막무가내식 투신은 주님께 나를 내어맡기는 ‘의탁’이 아니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자포자기’에 가깝지요. 우리는 절대 그래서는 안됩니다.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비우고 주님께 올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탑을 세우는 사람의 비유’와 ‘전쟁에 나서는 임금의 비유’에서 강조하시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내 능력, 조건, 상황, 관계 같은 외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나의 성향, 의지, 지향 같은 내적인 부분들까지 세세하게 살펴본 후, 그런 내가 어떻게 해야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겁니다. 또한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온 세상의 임금이신 하느님께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한 것이지요.
자기 소유를 비워내는 신앙의 여정을 걷는 우리가 혹시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에 오히려 소유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이미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고 욕심부린다면 그건 이미 소유에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주님을 따르는 길은 그분을 도구로 삼아 더 챙기고 더 채우는 길이 아니라, 주님을 그분과의 일치를 목표로 삼으며 더 내려놓고 더 비워내는 길입니다. 그래야 ‘능력의 주님’이 내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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