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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9. 버림과 따름 / 상경기[3] / 공관복음[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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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08 조회수179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9. 버림과 따름(마태 10,37-38; 루카 14,25-27) / 부스러기 복음[104]

 

버림과 따름은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여기서는 당신 제자의 조건에 관한 여러 가르침이 모아져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버림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버림으로 결국은 당신을 따른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많은 군중이 함께 길을 가시다가 그분께서 그들을 보시면서 엄히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히브리 말에는 더 사랑하다, 덜 사랑하다와 같은 비교급이 거의 없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미워하다를 이러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나. 덜 사랑하다를 표현할 길이 없어, 대신 미워하다로 표현한 것이라나. 그래서 미워하지 않으면을 말 그대로 미워하다가 아닌, ‘덜 사랑하다라는 의미란다. 말 그대로 부모님마저 미워할 수 없는 게 실제니 말이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부모 공경을 여전히 지켜야 할 중요 계명으로 제시하시기 때문이다(루카 18,20).

 

이런 점에서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목숨보다 나를 더 좋아하지 않으면으로 봐야할 게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목숨마저 덜 사랑해야만 내 제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 말씀을 쉽게 풀이한 거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의 이 무정한말씀마저 약화시켜서는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근본적이고 무조건적인 추종을 요구하신다. 이렇게 예수님과 마주하는 이에게는 다른 인간적 관계들은 모두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예수님께만 전적으로 구원이 달려 있기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언급하셨다. 부모님이나 자식들을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이는 당신께는 합당하지 않단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이도 당신께는 적합하지 않으시다나.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또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두 비유를 더 말씀하신다. “누가 탑을 세우려면, 경비를 먼저 계산하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해, 보는 이마다 비웃으며, ‘저 자는 일은 벌려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것인지를 헤아리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다면, 사신을 보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는 본디 중요한 일, 특히 여기서는 예수님을 따르려고 투신하는 일을 가리킬 것으로 보이는 것을 시작하기 전에,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본보기로 보여 주는 비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도 따름을 위한 버림을 의미하는 포기의 촉구로 제시한다. ‘은 여기에서 포도밭에 있는 망대나 그 밖의 농사일을 위해 주로 돌로 세운 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가난한 농부로서는 섣불리 달려들 수 없는, 경비가 드는 공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노골적으로 미워하다로 표현되는 이 말씀은, 가족 사이의 유대가 당연하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이들의 여정에서는 장애가 될 수도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세속의 것은 버리라는 거다. 만약 그 버림을 소홀히 한다면 어쩌면 우상으로 우리가 홀릴 수도. 이처럼 세속의 버림은 빛의 자료로 가는 따름이다. 이는 어쩌면 하느님만을 따름의 대상으로 본다면, 나머지는 결국 다 우상일 수도. 그러기에 그분만을 바라보는 우리 신앙인은 어차피 마음이 가난할 정도로 버려야만 할 게다. 그 버림이 박해받는 일일지라도 버려야만 하리라. 그러면 하늘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기에.[계속]

 

[참조] 이어서 ‘30. 소금이 맛을 잃으면(마태 5,13; 마르 9,50; 루카 14,34-35)’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버림,따름,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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