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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혜로운 삶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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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12 조회수308 추천수6 반대(0) 신고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는 삶-

 

 

"한 밤중에 소리가 들렸도다, 신랑이 오시니

 어서들 마중 나가라."(마태25,6)

 

아침성무일도 즈카르야의 노래 후렴이 참 좋습니다. 오늘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 마음이 되어 흥겹게 불렀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임맞을 준비를 끝낸 11월의 겨울나무들은 늘 봐도 감동입니다. 23년전 11월 이맘때쯤 시 두편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거기 그 자리의 은행나무들입니다.

 

-하늘향해 쭉쭉 뻗은 은행나무들

 임맞을 준비는 끝났다

 마침내 사랑 잎들 다 쏟아 노오란 길 만들어 놓고

 임 기다리는 은행나무들

 너무 아름답고 투명해 슬프고

 깊어 고요한 노오란 길 단풍잎 길

 묵묵히 임 기다리는 은행나무들

 나 이런 사랑 본 적 없다-2000.11.15

 

“임 맞을 준비는 끝났다”라는 시입니다. 정말 하루하루 날마다 “임 맞을 준비는 끝났다”라는 준비된 자세로 깨어 살고 싶은 마음은 하느님을 찾는 누구나의 깊은 갈망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그해 11월 말의 겨울나무란 시입니다.

 

-떠나자

 떠나 보내자

 미련없이 아름답게

 나 늘 푸른 사철나무보다

 잎들 다 떠나 보낸 겨울나무가 좋다

 가난한 겨울나무 앞에 서면 왜 이리 부끄러워질까, 

 왜 이리 가슴 저릴까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무수한 나뭇가지들

 참 간절한 그리움의, 기다림의 무수한 촉수들

 볼 품은 따질 게 아니다

 그대로 그리움 덩어리 침묵의 기도로구나

 하늘임 향해 쭉쭉 뻗은 무수한 내 그리움의, 기다림의 촉수들

 나도 한 그루 겨울나무로구나

 그대로 그리움의 덩어리 침묵의 기도로구나

 나도!-2000.11.29.

 

23년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참 많은 사랑하는 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 가니 주변에서 참 어렵고 아픈 분들이, 슬픈 분들을 참 많이 봅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매해 끝무렵의 요즈음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하고 보내며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지의 어둔 삶이 아니라, 지혜의 투명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제 읽은 아름다운 깊은 울림을 주는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좋은 건축에는 그늘이 있다. 나는 좋은 그늘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최고의 건축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리의 옛집을 좋아하는 것은 그늘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 집들이 드리우는 그늘은 단색조와 단조로운 그늘이 아니라 여러 층을 거느리고 있다.”

 

집은 사랑입니다. 집은 그리움입니다. 집은 살아 있습니다. 좋은 나무를 닮은, 좋은 집을 닮은 사람들의 그늘 역시 훌륭합니다. 빛과 그늘이 공존할 때 깊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늘이 없는 삶은 깊이가, 생명이, 빛이, 향기가, 조화의 아름다움이 없는 천박淺薄한 삶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봄觀”이란 시입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다

 삶은 흐른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가을의 황홀과 겨울의 적요

 삶과 죽음

 빛과 그늘

 늙음과 젊음

 아름다움과 추함

 강함과 약함

 건강과 병

 함께 받아 들이는 것이다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1998.11.4.

 

모든 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이 됩니다. 말 그대로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모두를 받아들이며 임맞을 준비를 끝낸 겨울나무들처럼 깨어 준비하며 주님 오실 부활의 봄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로 오늘 말씀들이 답을 줍니다. 

 

첫째, 지혜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질적 병인 무지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지혜뿐입니다. 지혜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지혜를 사랑하여 지혜를 훈련하여 습관화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수록,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수록 사랑과 지혜, 겸손과 지혜입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지혜, 겸손과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사랑-지혜-겸손입니다.

 

지혜는 찾기 쉽습니다. 정말 지혜를 사랑할 때 눈이 열려 곳곳에 선물처럼 널려 반짝이는 지혜, 살아 있는 지혜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반영하는 지혜의 선물입니다. 지혜를 사랑합시다. 지혜를 갈망합시다. 오늘 제1독서 지혜서가 우리를 지혜로운 삶으로 초대합니다. 참 좋은 최고의 선물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예지다.

 지혜를 찾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일부만 인용했습니다만 모든 내용이 귀하고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정말 지혜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일어납니다. 화답송 후렴중 “당신” 대신 “지혜”를 넣어 부르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자 지혜자체이기에 이렇게 노래해도 무방합니다.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 지혜를 목말라 하나이다.”

 

둘째, 희망입니다.

지혜의 빛이듯 희망의 빛입니다. 정말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사는 이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희망과 함께 가는 기쁨입니다. 지혜가 하느님의 선물이듯 희망과 기쁨도 선물입니다. 희망의 샘, 기쁨의 샘이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죽음을 넘어 부활의 희망을 사는 이들이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희망이, 꿈이 없으면 살아 있다 하나 실상 죽은 사람입니다. 꿈이, 희망이 늘 생생해야 나이에 상관없이 늘 푸른 젊음의 삶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꿈에, 희망에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부활의 희망으로, 부활의 기쁨으로 열려 있는 죽음입니다. 죽음의 문이 활짝 열리면 새로운 시작의 하느님 나라입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는 주님 안에서, 죽어서는 주님과 함께 있는 우리들입니다. 아니 참으로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을 믿으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이미 오늘 지금 여기서 삶과 죽음을 넘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입니다. 우리는 이런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좋은 지혜와 희망의 선물입니다.

 

셋째, 깨어있음입니다.

늘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며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이 참으로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깨어 있는 슬기로운 이들에게 시작된 하늘 나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열처녀의 비유는 바로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다섯의 어리석은 처녀들은 유비무환의 지혜를 몰랐습니다. 참으로 태만하고 무책임했습니다. 하느님의 하루하루 선물의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지 못했습니다. 영혼의 등잔에 신망애信望愛의 기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누구도 탓할 수 없고 탓할 것은 자신입니다. 하느님 부과하는 심판이나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 자초하는 심판이요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하늘의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영혼의 기름 등잔에 신망애信望愛의 기름 가득 채워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하늘 나라 잔치에 신랑인 주님과 함께 입장했는데 뒤늦게 기름을 마련하여 도착한 이들에게 문은 닫혔고 입장은 좌절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아무리 후회해도 늦습니다. 언제 주님이, 죽음이 도래할지 모릅니다. 아니 늘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늘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닫힌 문을 통해 들려온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청천벽력같은 말씀입니다. 평생 주님과 함께 살았다 자부하는데 우리를 알지 못한다니요. 내 좋을 대로 주님을 짝사랑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랑할 때 압니다.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하느님을 몰랐던 어리석은 처녀들이었습니다. 사랑의 앎의 지혜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아무리 배워도 초보자인 사랑 공부, 평생 배워야 하는 공부가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공부입니다. 

 

과거는 지났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회개한 이들의 과거는 불문에 붙이십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참으로 용기를 내어 우보천리의 자세로 겸허한 자세로 겨울나무가 되어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십시오.

희망을 사랑하고 추구하십시오.

깨어있음을 사랑하고 추구하십시오.

 

한결같이, 끊임없이, 하루하루 날마다 이렇게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이니 걱정안해도 됩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오시는 주님을 만날 시간입니다.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25,13).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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