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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귀가(歸家)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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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14 조회수358 추천수5 반대(0) 신고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삶-

 

 

어제 수도형제들과 함께 참 오랜만에 왜관 수도원 장례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독일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중 가장 친화력이 좋고 한국말을 잘하며 명랑하고 활달했던 거의 한국인과 같았던 주광남 보나벤투라 수사님 장례미사였습니다. 수사님의 약력도 각별한 느낌이었습니다.

 

1937년에 태어나 17살(1954년)에 수도원에 입회했고 22세(1959년)에 종신서원후 한국에 파견되어 86세(2023년)까지 선교사로 사셨으니 64년을 한국에서 사신 것입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파킨스병의 악화로 병상에서 참 힘든 삶을 사셨으나 끝까지 순종하는 자세로 사시다가 선종한 것입니다. 어제 날씨는 겨울 날씨처럼 추웠지만 참 아름다운 만추(晩秋)의 위령성월이라 뜻 깊게 생각되었습니다.

 

“아, 수사님은 삶의 온갖 병고에서 해방되어 죽음의 마지막 문을 통과해 아버지의 집에 귀가하셨구나! 아, 축제와 같은 죽음이다! 죽음은 해방이요, 귀환이요, 해후요, 화해요, 위로요, 구원이로구나!”

 

저절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정말 장례미사는 물론 장지에서의 느낌 역시 축제같은 느낌이었고, 수도원 묘지에는 정다운 추억을 지닌 세상을 떠난 무수한 수도형제들이 살아서 수사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떠오른 18년전 2005년 위령성월 단풍잎들 찬란히 덮인 땅을 보며 쓴, “마침내 별들이 되어” 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별들이 

 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단풍 나뭇잎들

 하늘 향한

 사모(思慕)의 정(情) 깊어져

 빨갛게 타오르다가

 

 마침내

 별들이 되어

 온땅을 덮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

 

 오!

 땅의 영광

 황홀한 기쁨

 죽음도 축제일수 있겠다”-2005.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고해인생이 아니라 축제인생이요, 죽음도 축제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은 ‘무에로의 환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라는 것입니다. 미사경문 제3양식중 장례미사시 제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성자께서 죽은 이들의 육신을 다시 일으키실 때에

 저희의 비천한 몸도 성자의 빛나는 몸을 닮게 하소서.

 또한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

 

바로 우리의 궁극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런 좋으신 사랑의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둘 때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지혜서 역시 의인들의 죽음에 대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선택받은 우리들에게 주신 은총은 헤아릴 수 없이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드릴 응답은 찬미와 감사, 겸손과 순종, 사랑과 믿음뿐일 것입니다. 모두가 은총인데 새삼 무엇을 청하겠는지요! 참으로 이런 주님께 희망을 두고 믿고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다만 ‘종과 섬김의 삶’에 충실하며 ‘귀가의 여정’을 살 것입니다. 

 

특히 강조할 것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쉬운 것은 우리이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쉬워서 기도하고 미사드리는 것이지 하느님이 아쉬워 기도하고 미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쉬워, 구원받기 위해, 찬미와 감사요, 섬김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 ‘연중 평일 감사송 4’ 양식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쉬워, 필요해, 살기위해, 구원받기 위해, 주님을 열렬히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찬미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와 감사인데 새삼 무엇을 요구하겠는지요! 이렇게 이해하면 오늘 복음에서 종의 반응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주님의 다정한 충고 말씀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평생 화두로 삼아 깊이 늘 새기고 지내야 할 복음 말씀입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이런 종들 정말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충실하고 의로운, 멋지고 매력적인 종들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이런 영성으로 종과 섬김의 삶을 살면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자체가 구원이요,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역시 순탄대로를 밟을 것입니다. 저절로 이어지는 감사와 놀라움의 고백일 것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 사랑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의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시고, 하루하루 한결같이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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