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34. 율법과 하느님 나라 / 상경기[3] / 공관복음[1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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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1-15 | 조회수12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4. 율법과 하느님 나라(마태 11,7-15; 마르 10,1-12; 루카 16,14-18) / 부스러기 복음[109] 율법과 예언자들은 옛 계약 또는 구약을 가리키는 데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사실 세례자 요한도 구약의 인물이다. 이제 이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를 천명하신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시며,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단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다시 말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나. 그러시면서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성경에 이렇게 기록된 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그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까지만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된 바로 그 엘리야다. 귀 있는 이들은 들어라.” 그리고는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르신다.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누구나 간음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유다인들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내보내던 것을 이렇게 금지하는 것이, 예수님과 모세의 율법을 가르는 가장 분명한 단절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에 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드신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거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다고 따지는 것에 대해서, ‘혼인과 이혼’에 관한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이렇게 요한까지만 적용되는 율법을 이제는 달리 해석하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다양한 비유와 사례를 드시면서, ‘하느님이냐 재물이냐’를 두고 당신 뜻을 분명히 하셨다. 그리고 ‘율법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정확히 선을 그으시면서, 유다교의 여러 율법과 관련하여 당신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이에 유다교 사상의 대표자 격인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예수님 말씀에 비웃음으로 비난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바리사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위가 높고 존경을 받지만 하느님께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우리의 의로움이 하느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늘 새기는, 신앙인의 삶을 사는 우리였으면 한다.[계속] [참조] 이어서 ‘35.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두 부분인 이 비유는 고대 이집트와 유다에 알려진 주제에서 영감 받은 것으로, 현세에서 내세로 넘어감으로써 야기되는 ‘행복과 불행’의 상황반전 이야기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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