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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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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20 조회수276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루카 18,35-43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눈 먼 이가 간절한 염원을 담아 예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로써는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상대방이 나를 보게 만드는 방법 밖에 없는데, 사람들에게는 그 외침이 그저 듣기 싫은 ‘소음’처럼 들렸나봅니다. 그래서 ‘잠자코 있으라’며 그를 꾸짖지요. 그러나 군중의 핍박에도 그는 포기하거나 주눅들지 않고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자기 외침이 예수님의 귀에 들릴 때까지, 자기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예수님의 마음에 가 닿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겠다는 태세입니다.

 

그는 갑자기 눈이 멀어 말 그대로 ‘눈 앞이 캄캄’해진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주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분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으로 주님을 만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무엇을 청해야 할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또 바라야 할 구체적 원의를 마음으로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 일행을 만났고, 시각장애로 인해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온 그의 과거를 다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따뜻한 음성으로 그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눈 먼 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마음으로 뭔가를 바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바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의 뜻을 반영하여 제대로 내면화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그 눈 먼 이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또 바라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청원을 들어주시는 분이 누구신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 대한 호칭이 어느 새 ‘주님’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 눈 먼 이에게 예수님은 그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 소원을 이루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자기의 삶과 죽음, 과거 현재 미래까지 모두 주관하시는 ‘주님’이었던 것이지요. 한편 ‘다시 보게 해달라’는 말은 그저 망가진 시력을 회복시켜 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고 또 믿기 전에는 세속의 관점으로 삶과 사람을 바라보며 욕망과 집착에 휘둘리는 모습으로 살았다면, 주님을 알고 믿게 된 지금은 그분의 눈과 마음에 동화된 새로운 관점으로 삶과 사람을 바라보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신앙의 관점’이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갈 때가 많은 듯 합니다. 두 눈 부릅뜨고 꼭 챙겨봐야 할 소중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 고귀한 것들엔 눈을 감고 있으면서, 세월의 흐르면 부서져 사라져버릴 부질 없는 것들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님의 눈으로, 꼭 필요한 것들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청해야겠습니다. 세상의 재물과 권력에 눈 멀지 않는 용기를 청해야겠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 사랑의 섭리를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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