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37. 나병 환자 열 사람 / 상경기[3] / 공관복음[112]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90. 예수님이 주교에게 - 사랑과 진리가 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 (아들들아, 용기 ... |2| | |||
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1-20 | 조회수25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7. 나병 환자 열 사람(루카 17,11-19) / 부스러기 복음[11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다. 하필이면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다시 언급됨은 이 여행의 새로운 단원이 시작됨을 가리키면서, 예루살렘을 향한 거의 마지막 여정일 게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그들은 규정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열이나 되는 그들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만 봐서는 전체적으로 공경심이 더 담긴 친숙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어쩌면 적어도 예수님의 명령이 지니는 권능을 크게 부각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보다 저자세를 보인다고 여겨진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어여삐 여기시고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어 권능을 바로 보이신 것이다. 이 ‘증거’는 예수님의 권능과 함께, 병이 나은 이가 율법을 준수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자비로 인해,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이 다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사실 나병 환자 열이 입소문으로 예수님의 권능을 들었기에, 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아예 멀리서 큰 소리로 외친 게 아닌가?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무리의 절박한 외침과 딱한 처지를 헤아리시고는, 즉석에서 그들의 병을 곧장 낫게 하신 후, 사제에게 가서 정결해진 것을 확인받도록 하셨다. 당시에 나병이 나았더라도 공인을 받아야 했기에 ‘사제들에게 가 보여라.’라고 하셨으리라. 하지만 그 진절머리 난 병이 낫자,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드린 이는 몇 명이냐? 겨우 한 명뿐, 그것도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다. 치유 내용은 여기까지가 다다. 그러나 여기에 더 중요한 게 있음을 깨닫자. 은총에 대한 감사다.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사제의 선언을 들었을 때 그들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그들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도 남았으리라. 그런데 예수님을 찾은 이는 열에 단 한 사람, 그토록 애원한 그들이었건만 아홉은 외면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외면했을까? 열에 그 아홉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어쩌면 이는 지금의 우리들 모습일 수도. 우리 안에도 이런 경우가 없는지를 살펴야만 하겠다. 급할 때면 “주님, 주님!” 하다가도, 막상 해결되면 감사드리는 걸 잊을 때가 없는지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렇게 구원을 간청한 이는 열 명이었지만, 막바지 구원에 이른 이는 사마리아인 단 하나뿐이었다. 어쩌면 우리도 남의 도움 많았다는 것을 심심찮게 깨닫는다. 이 와중에 뜻하지 않게 피해 준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그 많은 고마움에 감사는커녕, 상처 준 그것들마저 다 잊는다. 오히려 간간히 받은 서운했던 것들만 가슴에 안은 채 그게 전부인양 씩씩거린다. 그러기에 지금이라도 예수님께 치유의 은총을 저버린 그 나병 환자 열에 아홉 격인 이가, 우리인지를 묵상해 보자. 그러기에 되돌아 와 예수님께 큰 감사 올린 ‘그 하나’라도 되고자, 이 시각 스스로 다짐을 해보자.[계속] [참조] 이어서 ‘38. 하느님 나라의 도래(마태 24,23-28.36-41; 마르 13,32-37; 루카 17,20-37)’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