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39. 불의한 재판관 / 상경기[3] / 공관복음[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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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1-22 | 조회수17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9. 불의한 재판관(루카 18,1-8) / 부스러기 복음[114]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 비유를 드시면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이렇게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어쩌면 우리는 죽기 살기를 각오하면서까지, 저 과부마냥 끝까지 저렇게 그 재판관에게 괴롭힐 정도로 기도하는지? 사실 그 재판관은 누가보아도 불의한 자다. 그렇지만 그 과부의 요구는 그야말로 절실하다. 그래서 그녀의 간청이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을 돌린다. 소원 빈다는 것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어떤 행위이다. 자신이 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조차도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절대자에게 절실히 소원을 빌 때가 있단다.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신다. 이렇게 그분은 끊임없는 끈기를 요구하신다. 꾸준히 드린다면 하느님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우리에게는 정말 큰 용기를 준다. 기도는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힘을 끌어 주시는 거다. 그러려면 먼저 차분한 마음이어야 한다. 아무리 할 일 많고 감정이 복잡하더라도 그걸 제쳐 둘 수 있어야만 할 게다. 어쩌면 그 불의한 재판관은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거만한 인물이었지만, 그러한 그도 죽기 살기를 각오한 과부의 청원에는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도 기도한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지를 돌아보자. 예수님께서도 그 과부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단다. 당시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시비를 법정에서 가리지 않고 원로들에게 가 중재를 부탁했다. 그러다가 어떤 쟁의를 재판에 넘기면, 담당 재판관은 로마 총독이 임명했다. 그들은 뇌물에 눈이 멀어 공정을 기대하기는 쾌나 어려웠다나. 한편 과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다. 그러니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였지만, 그래도 한 가지 힘은 바로 끈질김이었으리라. 사실 우리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 평소에는 하느님을 잊고 지내다가 어려운 일에는 하느님께 매달린다. 곤경에 처할 때에 기도하는 게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만 기도한다면, 너무 이기적이다. 늘 기도하는 이야말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복된 이일 게다. 이처럼 재판관은 불의하고 탐욕스러운데도 그 끈질김에 못 견디어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선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야 의당 꼭 들어주시리라. 이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신뢰하며 끝까지 청하는 거다. 그것만이 인간 마음을 넘어 하느님마저 돌려놓을 게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기도의 내용이다. 기도는 먼저 하느님 찬미로 시작해야 한다. 이어 공동체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기도하자. 그 뒤 바라는 바를 진솔하게 청하자. 우리가 이처럼 하느님께 간청해야 할 것은 자기 직분에 부합된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로서 하느님 뜻에 걸맞게 진솔하게 기도드리자. 이렇게 보니 우리가 늘 올바른 것을 간청하는지를 되돌아보아야만 할게다. 오로지 나 자신만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려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아닌지. 나아가 나에게 다소간 득이 될 것이라 여겨지더라도, 어쩌면 결국은 나와 공동체에게 해가 될 것이 아닌지도. 이처럼 기도는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공동선을 찾아 청해야만 될게다. 이리하여 기도는 나만을 위한 이기적이고 속 좁아서는 결단코 안 될게다. 우리가 간청하는 기도내용이 하느님 뜻인지를 늘 묵상하자.[계속] [참조] 이어서 ‘40. 바리사이와 세리(루카 18,9-14)’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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