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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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11-24 | 조회수524 | 추천수3 | 반대(0) |
교우들과 함께 ‘지 세실리아 수녀님’의 금경축 축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미사 후에는 본당에서 준비한 조촐한 축하 행사가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1973년에 첫 서원을 하였고 어느덧 50년이 지났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30년이 넘는 인연을 이어온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전우들이여 생각건대 이번일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추억이 될 것이다.’ 수녀님도 지난 50년 동안 다가오는 많은 어려움을 지혜와 열정 그리고 기도와 헌신으로 극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금경축 축하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다양한 능력으로 난관을 극복하였듯이 수녀님도 수녀님의 내면에 많은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녀님은 낯선 미국 땅에서 이민자들을 위한 상담을 해 주었습니다. 교사로서 5,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화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수도자로서 가난, 정결, 순명의 삶을 충실히 살았습니다. 50살 밖에 안 돼 보이는 수녀님이 벌써 수도생활 50주년이라니 놀랍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기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미사에는 저를 포함해서 4명의 사제가 함께 하였습니다. 시몬 신부님은 3년 후에 금경축이고, 강론을 하였던 브로스논 신부님은 8년 후에 금경축이고, 저는 18년 후에 금경축이고, 가비노 신부님은 계산은 하지 않았는데 대략 33년 후면 금경축이 될 것 같았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저도 제 안에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제게 부지런한 성격을 주셨습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날 수 있기에 좀 더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기에 높은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거나,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교회의 직무는 ‘이어달리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못하면 다음 분들이 이어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는데 주님께서는 제게 많은 협조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좋았던 기억은 오래 기억하려 하였고, 나쁜 기억들은 빨리 잊어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오디세우스처럼 불굴의 의지와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금경축을 맞이하는 수녀님처럼 다양한 능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삶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의 삶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능력과 업적으로 제국을 세웠던 왕들도, 이름 없는 산골에서 피었다 지는 꽃처럼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사람도 부활 이후의 삶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능력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좀 더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성찰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 모두 천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부활’이란 말의 뜻은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일어서다. 다시 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낡은 관습과 습관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죄의 상태에서 벗어나 잘못된 틀을 벗어버리고 사랑과 희망의 날개를 얻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갈릴래아로 가라!’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던 곳입니다. 절망 중에 있던 사람들에게,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십자가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에 대한 용서입니다. 분노와 원망을 던져버리고,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몸의 변화가 부활이기도 하지만,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부활의 시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믿으면 아나니, 그때 아는 것은 예전에 아는 것과는 다르다.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는 것과는 다르다.” 하느님을 믿으면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분노와 미움, 증오와 불만에서 사랑과 용서, 겸손과 친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천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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