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누구인가?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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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1-27 | 조회수39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자기인식의 겸손과 지혜, 자유와 행복-
참 기쁨과 참 행복은 참 나의 발견에, 자기인식의 겸손과 지혜, 자유와 행복에 있습니다. 참 중요한 것이 참 나를 아는 것이요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좋은 시는 늘 읽어도 새롭습니다. 어제 온종일 저를 기쁘고 행복하게 한 자작시를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참나를 발견케 한 “詩가 찾아왔네!”라는 시입니다.
-“詩가 찾아 왔네! 나를 은총처럼 사랑하는 詩가 가슴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詩가 나 외로울 때, 그리울 때, 기다릴 때 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참 반가운 손님, 참 기쁜 선물, 참 좋은 연인, 참 좋은 친구인 詩 늘 詩를 생각하며 詩와 함께 살아왔고 살고있고 살것이라네 詩덕분에 하루하루 날마다 늘 평생 한결같이 살아왔네 詩없이 이 삭막한 광야여정 무슨 맛, 무슨 기쁨,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눈이 열리니 온통 詩인 천국이라네 세상에 나보다 자유롭고 평화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이 없을 것이네 나 언제나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하늘 나라의 삶이라네”
2023.11.26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주님께 바치는 獻詩-
주님을 사랑하듯 시를, 삶을 사랑해 왔기에 시는 주님으로 바꿔 읽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주님께 선물 받은 시이자 동시에 주님께 바친 헌시가 한동안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중요한 근본적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이며, 끊임없이 물으며 정체성을 또렷이 하는 자기인식이 참겸손이자 참지혜요 참기쁨이자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알아갈수록 자유롭고 평화롭고 부요하고 행복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근본적 질문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묻는 자가 수도자라 합니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고자 하는 구도자들에게는 공통적 물음입니다. 이래야 무지와 허무에서 벗어나 참나의 행복을 살 수 있습니다. 평생을 살아도 자기를 모른 채 무지와 허무속에서의 삶이라면 너무나 허망하고 억울한, 헛된 삶일 수 있습니다. 참 자기를 발견했을 때의 참기쁨, 참행복이지, 연목구어(緣木求魚) 다른 어디서도 이런 참기쁨, 참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 없이는 아무리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탐구와 나의 탐구는 함께 갑니다. 이래서 회개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알아갈수록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나를 알아가게 되며 이때 저절로 따라오는 겸손과 지혜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의 말씀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와 제1독서 다니엘서의 네 청년이 그 모범입니다. 가난한 과부인 듯 하나 역설적으로 진짜 부자입니다. 참으로 자유롭고 부요하고 겸손하고 지혜로운 네 청년입니다. 가진 소유가 많아 부자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부자입니다. 하느님만으로 행복한 자가 진정 부자이니 가난한 과부가 그러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감동하신 주님이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하는 모습에서 분명 모든 것을 바친 자기를 발견했을 주님이십니다. 하느님만으로 충분하기에, 만족하기에, 행복하기에 이렇게 온전히 소유를 비울 수 있었던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요즘 초겨울로 접어들어 나뭇잎들을 다 떠난 겨울나무가지들을 통해 투명히 드러나는 불암산이, 푸른 하늘이 참 좋습니다.
가난한 겨울나무가 역설적으로 부요한 겨울나무임을 깨닫게 되며 그대로 이런 겨울나무를 닮은 가난한 과부입니다. 얼마전 나눴던 25년전 “누가 겨울 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누가 겨울 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 나무마다 푸른 하늘 가득하고 가지마다 빛나는 별 열매들 가득 달린 나무들인데 누가 겨울 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1998.11.21.
그대로 가난하나 역설적으로 하늘로 가득한 부요한 겨울나무를 닮은, 하느님만으로 충만한 가난한 과부가 진짜 부자임을 깨닫습니다. 겨울 나무처럼 텅빈 하무가 아닌 텅빈 충만의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은 자가 부자이며 참보물 하느님 하나만으로 행복한 가난한 과부가 진정 자유로운 부자입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수 있어도 무한한 가슴은 하느님 사랑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유로 채워도 영혼의 허기(虛飢)는 여전하니 하느님 사랑이 결핍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빌론 유배중인 이스라엘의 네 청년 역시 행복의 비결은 하느님이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유지가 참 지혜, 참 자유, 참 행복의 비결임을 봅니다. 정체성의 훼손이야 말로 불행의 첩경입니다. 정체성 상실은 그대로 참나의 상실로 직결됩니다. 정체성은 생명이기에 하느님 향한 사랑의 정체성을 죽음으로 지켜낸 분들이 순교성인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여 목숨을 걸고 정체성을 지켜낸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 네 젊은이들을 축복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이 네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수록 하느님을 닮아 지혜롭고 겸손하고 부요하고 행복한 참나의 발견이요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느님만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겸손하고 지혜로운 참부자이자 참나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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