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마태25,31-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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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11-29 | 조회수151 | 추천수2 | 반대(1) 신고 |
2023년 11월 26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2> <입당송>(묵시5,12)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복음(마태25,31-4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앞 탈렌트비유 참조 (마태25,14)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살해 되었다가(대속) 의롭게 하시려 부활하시어 하늘로 떠나신 후 다시 오시는 영광, 재림의 예수님이시다. 오늘 복음은 그 탈렌트 비유 말씀의 결과물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 오른쪽엔 다섯 달렌트와 두 탈렌트, 곧 하느님의 말씀을 활용, 열심히 공부해서 하늘의 대속, 그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착한 종(의인)이라 칭찬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하셨다. 왼쪽에는 한 탈렌트, 곧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지도 않고 성경책을 고이 잘 모셔둔 사람이다.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야단맞고 어둠속으로 던져진 사람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에페1,14)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히브4,3)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며 물이다. 또한 치유, 자유이며 의로움의 겉옷이다. (로마13,14)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말씀)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37 그러면 그 의인(착한 종)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온갖 시련(試鍊)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 지친 사람에게 자신이 깨달은 말씀을 진리로 주어 하느님의 위로와 힘, 사람을 주었음이다. (이사49,15-16) 15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16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로마8,32-34)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 우리 모두는 주님의 지체(肢體)들로서 이웃에게 해 준 것이 곧 주님께 해드린 것이다. (1코린12,26-27)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 이 삶은 열심히 병원과 감옥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 사랑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 시간과 재물을 나누며 열심히 살았기에 언제 안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곧 사람의 사랑, 의(義)를 능가하는 하느님의 사랑, 의(義)를 주는 것이 선(善), 착한 일로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인간의 의로움은 쓰레기, 걸레라 하셨다.(이사64,5) 왜? 인간의 의로움은 은연중에 자기자랑이 되며 ‘나는 했어. 너는 안했지’ 하는 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의(義), 사랑은 하느님께만 있다.(로마3,23-26 1코린13,1-3)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 자기 자랑을 못한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 앉아 ‘쓸모없는 종으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짜 말씀을 깨달은 자에게서 나오는 행위, 열매다. ☧ 아버지!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구원의 힘, 진리, 지혜로 세우시어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 모두 종살이에서 벗어나 끝없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사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종말이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종말을 주관하시는 하는미을 두려워합니다. 성모님께서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그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된다면 종말이나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다림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그날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세상적인 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고, 출발점이 있으면 결승점이 있습니다. 인생도 마지막이 있기에 순간의 삶이 중요합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러 오신 참 왕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섬김의 중요성을 마음 속깊이 간직하면서 일상에서의 삶을 실천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우리가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거룩하고 깊은 마음이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우리는 종과 같이 허망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닌 신앙이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할지라도 허릴 깊이 숙이고 겸손하게 작은 사람들에게 봉사하지 않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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