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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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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03 조회수509 추천수5 반대(0)

LA에 가면 교우 분들의 집에 머물곤 했습니다. 늘 감사했고, 고마웠습니다. 저를 위해서 공항까지 와 주셨고, 잠자리는 물론, 식사까지 챙겨주셨습니다. 지난 11월 신문 홍보 때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직접 공항까지 와 주셨고, 수도원에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아침이면 수도원 경당에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교우 분들의 집에 머물 때처럼 편안함은 적었지만, 신부님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뉴욕에서는 두꺼운 잠바를 입어도 추웠는데 LA에서는 잠바를 벗어도 될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날씨도 좋았고, 따뜻한 신부님의 배려도 좋았습니다. 덕분에 신문 홍보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았으니, 뉴욕에 오시는 분들이 편안하게 지내다 가실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2023년에 제가 있는 뉴욕의 신문사에도 20여명 이상의 손님들이 왔다 갔습니다. 2024년에도 손님들이 오시면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이번 주에도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의 강의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부정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부정한 여인의 이야기에서 용서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부정한 여인의 이야기에서 누가 죄인인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부정한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죄인을 심판하는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에서 죄인을 용서하려고 하십니다. 성전은 이제 심판과 단죄의 장소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심판은 부당한 심판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부정한 행위를 했다면 남자도 같이 벌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소에는 부정한 남자는 없고, 부정한 여인만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사람들은 죄를 고발하려고 모였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한 신앙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려합니다. 직분이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제, 수도자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사제와 수도자가 특별하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려는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족례를 통해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습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습니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직분에 따라서 종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문제입니다. 성직자들이 조심해야 할 생각입니다. 사제도 베풀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의식과 주인이 되려는 마음은 다릅니다. 주인이 되려고 하면 심판하고, 비난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배우자와도 그렇습니다. 주인이 되려고 하면 심판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법을 악용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약자에게만 적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무엇을 썼을까?’는 중요한 것이 압니다. 무엇을 쓰셨는지가 아니라 쓰셨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인에게 쏠려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닥에 글을 쓰시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여인의 몸은 잠시나마 자유로워졌습니다. 그것이 죄인을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신 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여인이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디에 있느냐?’는 창세기의, 하느님의 물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아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누가 과연 죄인인가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 앞에서 숨어 버렸습니다. 진짜 죄는 하느님 앞에 숨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서 이웃을 심판하는 것이, 큰 죄입니다. 여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내가 주인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주인이 되지 않으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웃은 비난의 대상,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웃에게 그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고, 하느님께서 하려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자세가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니 심판하려는, 비난하려는, 단죄하려는 그 마음을 버리면 좋겠습니다. 직분이 있다고 해도, 하느님 앞에서는 나도 종이라는 생각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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