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1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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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2-06 | 조회수200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대림 제1주간 수요일] 마태 15,29-37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바둑 용어 중에 ‘미생(未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살아 있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상대방의 공격에 의해서 죽을 수 있는 돌들입니다. 그것을 끝까지 잘 관리해서 2집을 확보하면 바둑판에서 ‘살아 있는 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리를 잘못하여 2집까지 확보하지 못하면 바둑판에서 ‘죽은 돌’이 되어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그분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전까지는 작은 시련에도, 사소한 난관에도 허무하게 사그러들 수 있는 약하디 약한 불꽃입니다. 그렇기에 그 약한 불꽃이 믿음으로 강화되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될 때까지,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우리 삶의 뿌리가 주님이라는 생명의 샘에 닿아 영원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될 때까지 절대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통해 그 뜻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믿음이 굳건해지면 비로소 우리 삶은 ‘완생’(完生)이 됩니다. 어떤 고통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은총에 따르는 결과에,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숫자에 얽매이고 연연하다보면, 그 은총을 얼마든지 베풀어주실 수 있는 주님이라는 존재를 뵙지 못하게 되지요. 그러니 “너희에게 빵이 몇개나 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일곱 개 밖에 없다’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사랑의 기적에 협력하기를 거부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닮아서는 안됩니다.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서 고생한 저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예수님의 공감과 측은지심을 닮아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느님이시라면 그들을 위해 당신께 청하는 나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는 믿음을 닮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심지어 그와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결국엔 당신 뜻과 섭리에 따라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판결, 우리를 구원과 참된 행복으로 이끄시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향한 연민과 측은지심이 마음 속에 가득한 주님께서는 그저 듣기 좋은 말씀만으로, 도저히 따라가기 버거운 삶의 모범만으로 ‘어디 한 번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보라’는 식으로 앞장서서 달려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냉혹한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질병을 고쳐주셨고 마귀를 쫓아내주셨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빵의 기적을 통해 육체적 배고픔까지 직접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생각한다면, 그분의 제자인 우리들도 이웃 형제 자매들이 겪는 추위와 굶주림, 결핍과 고통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여, 그들이 영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이고 실질적으로까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도록 동반해주어야 합니다. “너희에게 빵이 몇개나 있느냐?”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빵의 개수를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신게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섭리를 굳게 믿고 용기를 내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한다면 사랑을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깨우쳐 주시고자,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 겁니다. 그러니 일단 한 번 주님을 믿고 따라봅시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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