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구원의 희망으로 복음을 / 대림 제1주간 수요일(마태 15,29-37)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내내 무척 바쁘셨을 게다. 낮은 언덕배기는 물론 구릉지, 물가에서도 설교하시고 심지어는 배위에서도 설교하셨다. 갈릴래아 호수를 중심에 두고 군중이 모인 곳이면 이곳저곳 마다치 않으시고 두루두루 다 다니셨다. 그리고 백인대장의 병든 종, 나병 환자를 포함한 여러 병자를 고치셨기에 잠시의 겨를도 없었다. 그러기에 편안히 계셨을 리가 만무하다. 예수님의 이 바쁨을 적나라하게 나열한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와 사천 명을 먹이시는 광야에서의 사흘간의 일정을 살펴보면, 가히 그 바쁨의 정도가 짐작이 된다. ‘많은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에서는, 실로 얼마나 많은 병자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또 사천 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고, 고통 받는 이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이는 가히 우리의 상상을 넘는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 “여기서 배불리 먹일 빵을 어떻게 구하겠습니까?”라고 따졌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불안하고 열악한데도 당신 뒤를 따르는 군중을 보시고 이르신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이나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게 없으니 말이다. 길가에 쓰러질지 모르니 굶겨서 보내지는 말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다독인 후,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들고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그것들을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다들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사실 예수님 마음으로 다가가면 이웃의 고통은 가엾이 여겨지고, 그 부족함을 안아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에 작은 기적이 일어 날 게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눈먼 이, 불구자들을 시도 때도 없이 고쳐 주시자 군중은 그분을 찬양하였다. 물론 사천 명을 먹이신 그 빵의 기적은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측은지심을 가지신 착한 목자이시다. 아마도 이 기적 같은 치유와 드라마틱한 기적에 곳곳에서 박수와 탄성이 웅성이며 퍼졌으리라. 이렇게 그분께서는 그 아픔들을 손수 끌어안으셨다. 이처럼 아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 한 해의 끝자락인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주위에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을 둘러보자.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시간, 맡겨 주신 일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 그들과 함께할 수도 있을 게다. 그 아픔의 자락에서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어쩌면 멋지고, 거기서 만난 게 다 귀한 선물이 되리라. 이처럼 부끄러운 지난 삶에서 새로운 희망이 되살아나면, 그게 하느님의 영광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고통으로 지친 이를 살피는 여유를 갖자. 우리가 이것을 깨우치도록 하느님은 오늘의 선물을 허락하셨다. 예수님도 아픔의 장소에 언제나 열정으로 달려갔듯이, 온정의 손길 기다리는 곳으로 봉사의 발길을 돌려보자. 가엾이 여기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도 그 마음을 지니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신 마음으로 군중 모두를 배불리 먹이셨다. 이는 그분께서 마련하실 영원한 잔치에 온전히 참여하여 누리게 될 행복을 미리 보여 주시는 기적이다. 그분이 주실 일용할 양식은 모두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만큼 풍족하리라. 우리는 구원의 희망을 가진 신앙인이다. 그 기쁨이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다. 이 희망이 솟는 넘치는 기쁨은 하느님 자비와 치유를 체험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이러면 날마다 만나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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