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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 예찬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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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08 조회수262 추천수4 반대(0) 신고

 

-지혜, 찬미, 순종-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드려라.

 묘한 일들 당신이 하시었도다.“(시편98,1ㄱㄴ)

 

오늘 성모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고 은혜롭습니다. 하루종일 끊임없이 부르고 싶습니다.

 

“알마 레뎀토리 마텔, 

 꽤 펠비아 챌리 폴타 마네스, 엩 스텔라 마리스.”

(구세주의 존귀하신 어머니. 영원으로 토인 하늘의 문, 바다의 별이시여.)

 

대림 제1주일부터 2월1일까지 잠자리에 들기전 끝기도후 부르는 라틴어로 시작되는 성모 찬송가로 마감하는 행복한 하루입니다. 이어 이른 밤 잠깨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후 집무실에 들어와 부르는 만세육창의 평화의 기도가 또 행복한 하루를 엽니다. 늘 외쳐도 늘 좋고 새로운 만세육창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오늘은 정말 반갑고 기쁜, 사랑하올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 대축일입니다. 어제 대축일을 앞둔 12월7일 성 암브로시오 기념일에 저희 수도형제 3명은 참 좋은 선물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오창선 고백신부님의 사제수품 50주년 행사에 영광스럽게 초대되어 지극한 환대와 선물도 가득 받았습니다. 정말 이런 환대와 선물은 생전 처음입니다.

 

말그대로 오창선 신부님을 통해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는 성모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참으로 치밀하고 섬세한 배려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이런 초대는 저희 수도승들에게는 생전 처음이고, 명동 파밀리아채플에서도 미사도 처음이요, 명동 프란치스코홀에서의 축하연도 처음이었습니다. 

 

미사끝무렵에 참석한 내빈 사제들의 소개가 있었고 사제중 저는 연령상 위에 속한 까닭인즉 일찍 제 이름을 불렀고 좌석 뒤쪽에 두 수도형제와 함께 있던 저는 벌떡 일어나 “저, 여기 있습니다!”하여 우레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뒤늦게라도 “저와 함께 온 안마르꼬 수사님과 백요셉 수사님입니다!” 용기를 내어 소개하지 못했음이 내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떠날 무렵 오창선 시몬 신부님께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신부님, 잔치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삼 초대가 은총의 선물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오고 싶어도 초대해 주셨기에 올 수 있었지 초대받지 못했으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연 초대받은 손님답게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사 전례에 참석하는지 반성했습니다. 며칠전 교황님은 주요 추기경 9인 회의에서 교회의 여성적 차원에 대한 나눔이 있었고 교황님의 모두 발언에서 크게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The Church is woman). 만일 우리가 여자가 무엇인지, ‘여성임의 신학(the theology of womanhood)’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교회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의 남성화는 해결되어야할 큰 죄입니다. 

세계적 신학자 예수회원인 한스 우르스 폰 발다살 말처럼 교회는 베드로적 또는 성직자 차원과 마리아적 또는 신비적 차원으로 두 차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적인 요소가 베드로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합니다. 남성다움이 없는 신부인 교회, 여성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여자입니다.”

 

정말 교회에 대한 참 심오하고 아름다운 정의입니다. 여자가 없다면 교회도 수도원도 존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수도원만 봐도 봉사자들 미사봉헌자들 예물 봉헌자들 대부분 여자들이지 남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제 집무실을 찾는 경우도 남자들은 거의가 빈손이지만 여자들 손에는 꼭 선물이 있습니다. 새삼 수도원을 사랑하는 자매님들 얼굴에서 저는 성모님 얼굴을 봅니다.

 

제대보 레이스에 보면 십자가가 열넷입니다. 레이스를 봉헌한 루시아 자매님의 설명에 감동했습니다. “수사님들 현재 열셋이기에 한분 더 오라고 열넷 십자가를 수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는 수도성소를 지망하는 네레오 형제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이또한 대축일을 앞둔 성모님의 선물로 생각되었고 좋은 수도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 듬직해 보이네요!” 덕담도 했습니다. 참 성모님의 은혜가 고마워 자주 부르는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도 성모님 은혜로 바꿔 2절까지 만세육창후 불렀습니다. 

 

“높고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높은 게 또 하나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성모님은혜, 푸른하늘 저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넓은 게 또 하나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성모님은혜, 푸른바다 저보다도 넓은 것 같애.”

 

말그대로 성모님 대축일 불러 드리는 축가요 오늘 자주 부르려 합니다. 성모님 선물에 대한 자랑이,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받고 싶은 성모님 덕을 나눕니다.

 

첫째, 지혜입니다.

지혜의 성모님, 동정 마리아입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참으로 주님을, 주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저절로 지혜도 따릅니다. 오늘 창세기 하와느 이점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분별의 지혜가 부족했기에 뱀의 유혹에 빠졌고 이어 아담도 죄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너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 숨어버린 아담입니다. “왜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 책임을 추궁할 때 이들의 변명과 핑계가 가관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하느님과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아담이요 신뢰 관계는 무너졌습니다. 무지의 악이 정말 무섭고 두렵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과 지혜의 결핍이 이런 관계 파괴의 죄를 짓게 했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먹었습니다.”

하와 역시 똑같이 무책임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없으면 탐욕과 교만앞에 속수무책입니다. 

 

하와의 무지를 일거에 만회한 새 하와인 성모님이 참 고맙습니다. 새삼 무지에 대한 답은 겸손과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지혜요, 끊임없는 참된 회개를 통해 주님을, 주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할수록 우리는 성모님처럼 겸손과 분별의 지혜도 선물로 받습니다.

 

둘째, 찬미입니다.

찬미의 성모님, 동정 마리아입니다. 제2독서 에페소서 찬미가는 얼마나 좋습니까! 그대로 성모님은 물론 초대교회 신자들, 그리고 우리의 심정을 반영하는, 참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또 우리의 복된 신원을 확인 하는, 그리하여 우리 수도자들이 매주 월요일 저녁기도때 마다 바치는 찬미감사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느 말마디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성모님 마음에 꼭 들으셨을 찬미감사가입니다. 아, 우리는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닌 이미 세상 창조이전에 하느님께 선택된, 불림 받은 성소자임을 깨닫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성인성녀들, 형제자매들과 함께 끊임없이 바쳐야 할 하느님 찬미찬양의 감사가입니다. 

 

도대체 이런 찬미찬양의 기쁨과 행복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 찬미찬양의 기쁨으로,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여기서 샘솟는 사랑과 지혜요, 무지에 대한 궁극적 처방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평생 저녁성무일도 끝무렵에 성모님과 함께 “마리아의 노래”를 부릅니다.

 

셋째, 순종입니다.

순종의 성모님, 동정 마리아입니다. 순종에 앞서 거룩한 사랑의 침묵이요 경청이요 겸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대로 감지되는 성모님 모습입니다. 참으로 눈밝으신 하느님은 겸손히 당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시골 나자렛에 숨겨진 삶을 살고 있는 침묵과 경청, 겸손의 동정 마리아 성모님을 찾아나섭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얼마나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인지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속내의 비밀을 다 털어놓습니다. 이런 성모님이 계시기에 하느님도 참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일방적으로는 일하시지 못합니다. 전능의 무능이라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어떻게? 묻는 마리아에게 소상히 설명하십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정말 거룩한 사랑의 침묵, 경청, 겸손의 동정 마리아를 선택하신 하느님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이어지는 동정 마리아 성모님의 응답에 하느님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성모님의 믿음은 이런 순종을 통해 절정에 도달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응답이 나오기전 온 세상이 쥐죽은 듯 깊은 정적의 침묵에 싸여있었다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주석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비롯하여 모든 천사들, 지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참으로 조마조마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에 인류의 구원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리아를 떠나니 하느님은 기뻐 춤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지혜입니다.

사랑의 찬미입니다.

사랑의 순종입니다. 

사랑밖에 답이,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동정 마리아 성모님을 닮아 날로 지혜와 찬미, 순종의 사람이 되어 성령충만, 사랑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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