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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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2-08 | 조회수29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루카 1,26-38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왕가에서는 왕자의 부인을 간택할 때, 수많은 규수들 중에서 엄선하여 최후의 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명망이 높은 가문 출신이어야 함은 기본이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해야 하며, 도덕 윤리적으로 그 어떤 흠결도 없는 완벽한 존재여야 했지요. 왕자의 부인을 뽑는 조건을 그 정도로 까다롭게 본 것은 그만큼 왕이라는 존재가 지 덕 체를 겸비한, 흠 없고 완전한 존재여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모태가 될 왕비를 잘 가려서 뽑아야 한다고, 그래야 그녀가 지닌 좋은 점들이 그 후손에게 전해질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인간이 길어야 백년도 못 살 왕의 어머니가 될 여인을 뽑는데도 그렇게나 세심하고 꼼꼼하게 따져가며 준비하는데, 하물며 하느님께서 만왕의 왕, 온 세상의 구세주가 되실 분의 어머니가 될 여인을 아무런 준비 없이 선택하셨을 리가 없겠지요. 하느님께서는 심사숙고 끝에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가 될 여인을 고르셨습니다. 아무런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하신 분, 그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아 순결하신 분, 인간적인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당신 뜻에 끝까지 철저하게 순명하실 분을 선택하셨는데, 그녀가 바로 나자렛이라는 마을에 살던 처녀 마리아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시골처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에 힘 입어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치열하게 고민한 다음, 단호하고 분명한 의지와 결단으로 ‘말씀하신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응답하지요. 자기의 부족한 지성으로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말에 힘을 얻어 용기를 낸 것입니다. 여성의 정결을 강조하던 당시의 엄중한 사회 분위기에서 혼례도 치르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한다는 것은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크나큰 위험이었지만,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냅니다.
오늘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여인 마리아를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게 보호하심으로써, 성자의 강생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신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으니 용서를 하는거라고, 그러니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족한 인간의 관점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저지르기 전부터 이미 용서할 준비를 시작하시지요. 그리고 그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 어떤 제한도 없이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무염시태’에서 그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사랑과 자비가 그분이 뜻하신 만큼의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 편에서의 응답이 꼭 필요합니다.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보호하신건 하느님이 하신 일이지만, 구세주가 될 아기를 잉태하는건 마리아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순명 덕분에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과 의지가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건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실 일이지만, 그 길을 끝까지 잘 걸어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건 그분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실천들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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