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2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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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2-11 | 조회수17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대림 제2주간 월요일] 루카 5,17-26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죄책감’과 ‘죄의식’, 비슷한 말 같지만 그 의미는 서로 다릅니다. 죄의식은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음을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 마음’입니다. 반면 죄책감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 인간은 부족하고 약한 존재이기에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죄를 지은 후에 죄책감과 죄의식 둘 중 어느 쪽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영혼의 구원에 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할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죄와 관련하여 보이는 태도를 통해 어느 쪽이 보다 긍정적인지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류는 중풍병자를 평상에 들고 와서 예수님 앞에 들여다 놓은 지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자리에 누워 옴짝달싹 못하는 그 병자를 가엾이 여겼고, 그에게 병에서 나아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기 위해 그를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가까이 갈 수가 없자, 그 병자가 누운 평상을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 위로 낑낑대며 들고 올라가 지붕의 기와를 벗겨내고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냈지요. 먼저 와서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을 새채기 한 것이나, 남의 집 지붕 위에 허락도 없이 올라간 것으로도 모자라 지붕을 뜯어 훼손한 것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만한 큰 잘못이라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라면 그 병자를 꼭 치유해주실거라 믿었기에,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그런 잘못을 저지른데 대한 책임까지 기꺼이 감당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더 나아가 그를 데려온 지인들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의 마음 속 죄책감을 덜어주시고 참된 믿음으로 이끄시어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두번째 부류는 잘못을 저지른 중풍병자의 지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신 예수님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단죄하려고 들었던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입니다. 그들은 부족한 인간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이미 죄를 지었고 또 언제든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회개’의 노력, 더 나아가 다른 이가 자신에게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려는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며 용서의 의무와 책임을 하느님께 전가하고는, 자신이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죄를 ‘덜’ 지었음을 내세워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단죄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런 무책임하고 뻔뻔한 모습이야말로 하느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해드리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지극한 사랑을 모독하는 잘못임을 모른채로 말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나태하고 안일하게 ‘죄의식’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한 나를 용서해주셨음에 감사하며 내가 받은 용서에 대한 ‘보속’으로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을 너그럽게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게하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에 힘입어 죄를 씻고 깨끗해질 겁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명하신 증거의 소명, 즉 자기 ‘평상’을 들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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