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잃은 그 한 마리 찾는 목자 곁에서 / 대림 제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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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2-12 | 조회수23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잃은 그 한 마리 찾는 목자 곁에서 / 대림 제2주간 화요일(마태 18,12-14)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이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은 그곳에 남겨둔 채 길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리하여 그가 양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찾은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처럼 이 작은 이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고자 그 어떤 수고도 감수하시고 찾으신 뒤에는 그 양을 메고 참으로 기뻐하신단다. 이게 바로 가난한 이, 죄인들의 슬픔과 괴로움을 어루만지시고 덜어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이리라. 그분께서는 이렇게 당신 자비의 마음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라틴 말로 ‘자비(misericordia)’라는 말은 두 의미가 합쳐진 것이란다. 하나는 슬픔 또는 괴로움을 뜻하며, 다른 하나는 함께하는 마음이란다. 따라서 자비란 마음이 슬픈 이에게서 오는 것이리라. 그래서 자비로운 이는 다른 이의 고통을, 마치 자기 일로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그 고통을 없애려 할 게다. 이처럼 함께하는 그 양들은 주님 품안에서 위안으로 즐거움을 찾는단다. 그렇지만 잘못된 길로 빠져 엉뚱한 길로 빠져 나간 주인 잃은 그 양들, 그것들은 양 찾아 나서시는 주님에게서 사랑과 자비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나.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이들까지도, 모두 품기를 바라신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널리 퍼진 현상 중에서 아주 염려스러운 게 이른바 왕따이란다. 비단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알게 모르게 따돌림 당하는 이들이 참 많다. 우리 역시 은연중 그런 행위에 동참하지나 않은지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로부터 어떤 특정인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것을 자세히 알아보거나 진위를 확인하지도 않고, 본의 아니게 막 퍼뜨리는 경우마저 있다. 어쩌면 이렇게 뜻하지 않게, 어느 특정인을 공동체에서 소외시키는 일에 동참할 때가 있을 게다. 나의 편리함이나 집단의 암묵적인 강요로 그를 소외시키는 일에 무심중 동참할 때도 있었으리라. 이는 역사적으로도 쾌나 비일비재했다. 유다 지도자들의 농간으로 군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흥분하여 소리 지를 때, 일부는 그분께서 죄 없음 알고도 침묵을 지켰었다. 그 책임은 누가 질까? 잘못을 저지른 자만이 회개하는 건 아니다. 회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회개는 주님 사랑하는 거다.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신 주님께 ‘온몸 되돌리는 것’이리라. 우리는 공동선을 찾아야만 한다. 부부는 신혼의 느낌을 되살리는 거고, 직장인은 처음 근무 때의 그 열정 되찾는 거다. 오래된 믿는 이라면 세례 때의 그 순수함을 되찾는 것도. 이건 결코 쉽지만은 아닐 게다. 그러기에 그 어떤 계기가 주어져야만. 가을에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린 나무는 봄이 되면 다시금 시작한다. 이렇게 새롭게 변화된 그 모습으로 주님을 보면서 살아가자. 주님께서는 내적 친밀감의 표현인 당신 마음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드러내신다. 목자의 표상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신다. 잃어버린 양들에게 부드럽게 행동하실 뿐만 아니라, 양들을 위해 당신 목숨을 내어 주시는 착한 목자이시다. 사랑은 함께하면 그 기쁨 배 되리라. 더구나 주님 곁에 늘 머무름은 그 크신 자비 더 느낄 게다. 이러니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 태어나 보자. 그분께서 그 한 마리 양을 찾으시고자, 그 수고까지 감수하신 걸 늘 기억하면서 그렇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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