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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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12-12 | 조회수24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정천 사도 요한)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여러분은 이 비유에 동의하십니까? 백 마리 양 가운데 하나가 사라졌다고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를 과연 칭찬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무책임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산에 방치될 아흔아홉 마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안전을 위하여 한 마리쯤은 그냥 포기하여 버리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아흔아홉의 무리에 속한다는 안도감으로 내리는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무리에서 벗어난 한 마리 양의 상황에 놓이더라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 양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호소할 것입니다. 목자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예수님의 시선은 아흔아홉의 무리가 아니라, 혼자 외로이 길을 헤매고 있을 한 마리 양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새끼 때부터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기르신 당신의 양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걱정에 잠 못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양을 찾아다니셔야 합니다. 여기서 남겨질 아흔아홉 마리의 안위를 논하는 것은 비유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주님의 몫일뿐더러, 그분께서 그 한 마리를 찾겠다고 나머지를 위태롭게 방치하실 리도 없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아닌 예수님의 시선을 따라갑시다. 그분께서 관심 있게 바라보시는 그곳을 함께 바라보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서는 일에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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