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되찾은 양의 비유 (마태18,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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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12-12 | 조회수24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되찾은 양의 비유
복음(마태18,1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 양(羊) 아흔아홉 마리가 모여 있는 산은 율법(律法)의 산이다. (숫자99는 100에서 하나가 부족한, 곧 하느님의 뜻, 진리가 빠진 불완전을 뜻한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가 아님을 깨달은, 그래서 하느님의 뜻인 율법(律法)을 대속(代贖)으로 완성하신 하늘의 의로움을 찾아야 한다고 그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기 부인(否認), 버림, 그 작은이로 율법의 산을 나온 양 한 마리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왜 자신을 버리고(부인하고) 작은이가 되라고 하셨나? 인간의 모든 것, 즉 세상의 명예(名譽), 의(義), 생명(生命)까지 그 모든 것은 사라질 연기(煙氣), 그림자일 뿐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다. 하느님은 그런 작은이를 뒤쫓아 가 찾을 때까지 찾아내신다. 그리고 기뻐하신다.(루가15,4참조)
독서(이사40,10-11)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 보이는 세상의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독서(이사40,6-8)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말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 인간의 영광의 꽃, 곧 인간의 의로움은 구원의 의로움인 주님의 말씀 앞에 시들어 버릴 풀일 뿐이라는 것이다.(이사64,5참조)
(이사45,23-25) 23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정녕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입으로 맹세하며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 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25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서 승리와 영예를 얻으리라.”
(바룩2,6) 6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와 우리 조상들 얼굴(의로움)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약, 약속, 그 하느님의 말씀만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구원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영광, 권세의 주인인 사탄에게~ (루가4,4)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그러니 율법(제사와 윤리)의 의로움과 사람들의 감동적 이야기를 많이 알고, 들었어도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새 계약의 말씀을 모르면, 믿지 못하면 헛것인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아래 모든 것은 헛것일 뿐이라 하신다.
(코헬1,2-3)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 모든 노고(老姑)? 율법의 행위와 세상의 선악의 도덕과 윤리의 삶이 하늘의 용서, 구원에 무익(無益)한, 보람이 안된다는 것이다.
독서(이사40,1-2)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 죄의 값은 두배, 갑절로 갚아야한다. 하느님의 명(命)이시다.(탈출22,4-8참조) 곧 우리의 죄 값이 하늘의 대속으로 갚아져 죄의 복역 기간이 끝난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의 손, 일로 갑절의 벌을 치룬 것이다. 그런데 왜 갑절일까? 그것은 하늘의 대속이 갑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늘의 쉼,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인데~
(탈출16,16) 16 주님께서 내리신 분부는 이렇다. ‘너희는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여라. 너희 식구의 머리 수대로 한 오메르씩, 저마다 자기 천막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가져가거라.’” =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루 양식으로 주신 ‘만나 한 오메르’다.
(탈출16,22.29) 22 엿샛날에는 한 사람에 두 오메르씩, 양식을 *갑절로 거두어들였다. 공동체의 수장들이 모두 와서 모세에게 이 일을 알리자, 29 보아라, 주님이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다. 그래서 엿샛날에는 너희에게 *이틀치 양식을 준다. 그러니 이렛(7)날에는 저마다 제자리에 머무르고, 아무도 자기가 있는 곳을 떠나 밖으로 나가지 마라.”
= 양식(糧食)인 만나, 곧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으로 하늘의 안식, 쉼을 누리게 된 것이다. 율법(律法)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은 구원의 진리가 아님을 깨달은, 그래서 인간의 영광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버린, 작은이만이 누릴 수 있는 갑절의 용서(容恕), 자유, 쉼, 안식이다. 그러니 광야(廣野) 같은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로 안식을 주신 하느님의 길, 하느님의 영광의 길을 내야(닦아야)한다.
독서(이사40,3-5)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의 영광만이 오롯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메우고 낮추는 삶이 우리의 구원을 넘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1코린10,31)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사람의 뜻을 위한 세상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복음, 그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시고, 입어 하늘의 안식을 누리는 하느님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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