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12.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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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3-12-14 | 조회수41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23년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미국에 유명한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서와 신학을 두루 섭렵한 석학이었고, 그래서 하느님에 관한 강의를 많이 했으며 신학교에서도 강의 활동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스스로 하느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풍부한 지식을 갖춘 신학자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이제 사제로서의 직분을 떠나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지요. “나는 하느님의 지식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뒤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신앙은 하느님이란 말밖에 모르는 어떤 할머니보다도 못했습니다.”지식과 신앙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식을 통해 신앙의 이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만 채우는 하느님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마음 안에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존경하는 신부들을 바라봅니다. 많은 신학적 지식을 갖춘 신부보다 사랑의 마음을 갖춘 신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능력 있고 재주 많은 신부보다 기도와 묵상을 열심히 하며 신앙적 열심을 보여주는 사랑 있는 신부를 원합니다. 그런데도 과연 사랑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합니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을까요? 지식을 채우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마음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하느님에 대해 충만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지도자인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등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지식만 있을 뿐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지식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광야에 나가서 오실 주님을 준비하기 위해 낙타털 옷과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풉니다. 충분히 사람들 위에 설 수도 있었겠지만,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께 대한 참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에 반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늘 나라를 폭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삶을 살면서도 마치 그 삶이 하느님의 뜻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까지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폭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요? 주님께 대한 신앙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무엇인가를 해라. 잘 되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를 해라.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란 없다. (짐 하이타워) 사진설명: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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