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2|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2-14 | 조회수16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금년에는 두분의 성직자 분을 저 하늘로 보내드렸습니다. 한분은 나의 영적인 아버지 박종인 신부님입니다. 다른 분은 교파는 달라도 목사 고모님입니다. 두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많은 상실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모님의 자제분들도 마찬가지로 참 좋은 분들입니다. 그 형님들과 누님들을 생각하면 참 눈물이 나오고 다들 나름 참 인간적인 분들입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저와 같이 일하는 지금의 사장님도 목사님의 아들이고 그분의 아버님도 95세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종교는 달라도 가고자 하는 바는 같은 것이구나 하고 믿었던 저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저와 같이 일하는 사장님과 관계가 틀어지고 있습니다. 입사하고 나서 그분이 저에게 하신 행동을 보면 나름 참 좋은 모습이었고 저도 그분의 행동에 감명을 받아서 나름 최선을 다하고 서로의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자유 토의 속에서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을 추구하시는 모습이 그분의 경영 철학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행동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형식은 자유 토론이었지만 결국은 자신이 마음 먹은데로 의사결정은 이어졌고 나중에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인간적으로 사장님께서 참 열려있고 목사님은 아니지만 아버지 영향을 잘 받아서 너무 신실하신 모습에 너무 좋아서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월급도 제가 원하는 수준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닌데 사람이 참 신실하여서 같이 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처음 마음 데로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 아들이라는 말에 아주 격분하면서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아주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속된 말로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듯이 적은 연봉을 주면서 아주 친한 표정을 하면서 세상의 천사가 여기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저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더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고 나서는 나는 당신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지상에 살아 있는 분들 중에 누구하나 거룩한 분이라고 Fix된 사람은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사람들의 마음도 아프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시 주님 앞으로 와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죄를 짓는 일반인과 같이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일반인과 다른 것은 죄를 지어도 다시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하고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 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망각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묵상글이라는 것도 성찰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나의 갈길을 주님 속에서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길이라는 것이 이 묵상 속에서 어둠 속에 한줄기 말씀을 우리 묵상 속에서 바라보고 찾고 행복해 하는 것이 우리 복음 묵상의 참 길입니다. 그런데 이 곳도 아니 저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인데 왜 ?? 시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다르다고 시기하시는 분들이 이곳에도 있습니다. 좀 안타까워요. 왜 자신을 성화하지 못하고 남과 나를 비교하는지 ? 비교는 백해 무익합니다.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답도 없는 길을 왜 걸어 가시는지, 너무 불쌍해 보입니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고 동물적인 근성, 너와 나를 비교합니다. 저 사람은 나와 같은 사람인데 아니 어찌 저렇게 나와 틀릴까 하면서 그를 단죄하는 데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세상에 틀린것은 없습니다. 다른 것은 있어도. 예수님이 자신의 공생활 중에 틀리다고 하면서 인간을 자신의 수준 이하라고 취급하면서 무시한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결핍을 충만함으로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 선하신 분의 마음을 우리도 해아리고 참 나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